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팀장(부동산학 박사)
요즘 서울·수도권 거주자들은 집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다.
한동안 박스권에서 움직이던 집값이 중대형을 중심으로 갑자기 급락하면서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집값이 주식도 아니고 어떻게 고점에 비해 반토막이 날 수 있을까. 믿기지 않을 일들이 주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러다보니 절망과 분노까지 뒤섞이면서 집단 히스테리 모습까지 엿보인다.
만약 집이 단순히 온 가족이 편히 사는 삶의 공간이었다면 이런 극단적인 트라우마는 겪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집이 재테크 수단인 투자 자산(Investment assets)화되면서 낳은 후유증 아닐까.
집은 두 가지 기능이 있다. 하나는 '홈(home)'으로 온가족이 편히 사는 삶의 공간이다. 또 다른 측면은 '하우스(house)', 즉 투자 자산이다.
우리 아버지 세대에게 집은 하우스보다 홈의 기능이 강했다. 1980년 이전 만해도 세입자들은 거의 6개월마다 이사를 다녀야 했다. 집 없는 설움은 뼈저림 그 자체였다.
온 가족이 사생활 침범을 받지 않고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 마련이 간절했다. 어렵게 자금을 마련해서 작은 집을 장만했고 홈으로 만족했다. 가격이 오르는 것은 덤으로 얻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홈보다는 하우스에 더 신경을 곤두세운다. 재건축아파트에서 보듯 집값 오르기만을 학수고대하는 기우제를 지내는 사람도 많다.
영국의 경제 애널리스트 조지 쿠퍼(George Cooper) 박사는 시장을 상품시장(Goods market)과 자산시장(Assets market)으로 분류한 뒤 두 시장의 특성을 진단했다.
상품시장에서 인간의 소유 욕망은 기본적으로 제한적이며, 상품의 가치를 소비나 이용에 둔다.
그러나 물건이 자산시장에 편입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인간의 소유 욕망은 무한대가 된다. 필요 이상으로 더 갖고 싶고 쌓아두려고 한다. 자산시장에서는 목적도 그 자체의 소비보다는 가격의 변화율을 기대하고 구입한다.
집이 투자 자산화되었을 때 집은 사용가치보다는 화폐로 바꾸기 위한 교환가치가 더 중요한 가치가 된다.
그러나 이런 경우 집은 금융상품 못지않게 휘발성이 강한 불안정한 자산이 된다. 지나친 집의 자산화는 주택시장이 주거 공간이 아니라 재테크 수단으로 전락, 수익률 게임장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무한한 소유 욕망의 자산 수요에 의해 주택 가격이 제어장치 없는 폭주기관차처럼 과속 상승과 폭락을 반복하는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강남 재건축아파트의 가격이 급등과 급락을 오가는 것도 다른 부동산보다 집의 투자 자산화가 더 많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집의 투자 자산화는 필연적으로 가격의 변동성 확대로 이어진다. 자칫 투자를 잘못할 경우 집은 내 삶을 송두리째 위험에 빠트리는 재앙이 된다.
지난 10년 동안 아파트 투기 바람이 광풍처럼 우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과연 우리에게 집은 무슨 존재였을까. 혹시 돈을 벌기 위한 수단, 말하자면 자본 이득이라는 욕망을 실현하는 수단이 아니었을까.
자본주의 시대, 집의 기능에서 투자 자산이라는 하우스의 가치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올인하는 것이 문제다.
다소 어렵더라도 집에서 하우스보다 홈의 비중을 서서히 높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마음의 평정과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다. 집은 행복의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다.
요즘 마음 속으로 자주 되뇌어 보는 말이 있다. 우리는 재테크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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