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아주중국> 민화작가 이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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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11-30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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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방하게 탁 트인 화풍의 예술가

글 권병준 미술전문 기자


민화는 화려한 색깔과 파격적 구성, 직설적 묘사의 익살스러움으로 사물과 현상을 승화해 낸다. 민족정서가 짙게 배어있는 조선시대 민화(民畵)는 누구든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골라 재주껏 그려내는 솔직함이 그 바탕이다. 민화는 사랑, 희망, 행복 등 다양한 상징성을 담고 있어 사람들을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로 이끈다. 거기에는 아름답게 살고자 하는 염원이 녹아있고 시대를 뛰어넘는 놀라운 상상력이 담겨있다.

민화작가 이정옥(李貞玉·61)의 작품세계는 맑은 기운과 서정, 명랑한 흥취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정서적으로 순화되고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좋은 기운의 에너지가 강렬하게 전해져온다. 인간사에서 누구에게서나 가슴 설레는 가장 행복한 날을 꼽으라면 바로 혼례 날을 빼놓을 수 없을 터인데 결혼 의식은 바로 전통적인 축제의 장(場)이기 때문이다. 민화 중에서 풍속도(風俗圖)에 해당하는 이 ‘혼례도(婚禮圖)’는 화가가 대단히 행복한 감정의 상태에서 그린 작품이란 것을 느끼게 한다.

혼례도

신랑의 행렬 장면은 해질녘 즈음의 풍경이다. 함진아비가 신부를 맞이하러 동네에 들어가며 행렬을 이끌고 있다. 청사초롱을 든 사람들과 얼굴에 액(厄)을 좇는 가면을 쓰고 소리를 지르며 일행을 이끄는 사람들이 신부의 마을로 들어가고 말을 탄 신랑이 뒤따른다. 또 신부측 장면은 친정 어머니가 준비한 신행(新行)의 음식과 필요한 의복, 가제도구 등을 싣고 와서 시집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내용이다. 또한 혼례를 치른뒤 그 가문의 식구가 되었음에 감사하고 아울러 대를 이어줄 자식을 기원하는 표시로 큰 상(床)을 받는 장면이다. 병풍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시집 어른들인데 윗분들에게 신부가 가장 대접 받는 때이기도 하다.

병풍을 친다는 것은 신성한 장소를 구별하는 아름다운 풍습이다. 산해진미를 다 받을 수 있는 공간이자 병풍 속의 모란꽃들은 부귀영화와 다산(多産)을 상징하고 동시에 그러한 염원을 담은 그림의 병풍을 친 것이다. 그러나 안과 밖이 분리된 것은 아니다. 병풍 안은 신성(神聖), 밖은 세속(世俗)적 공간이지만 이것이 함께 공존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마을의 아낙들이 장면을 엿보면서 기쁨을 함께 나누는 의미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낙원구룡도

이정옥 작가는 “결혼 풍속도 안에는 ‘함께 한다’는 한국적 공동체 의식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손에 대한 염원과 영원에 대한 기대를 담은 혼례는 양가 가문뿐만 아니라 온 마을의 축제이기도 하다”며 “우리의 민화에는 그 시대인들의 삶의 풍습 등의 회화성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한편 ‘낙원구룡도’의 구름은 곧 꿈이다. 구름 속에 피어나는 모란꽃과 용틀임의 어우러짐은 꿈꾸는 부귀영화가 이뤄지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았다.

행복

이 작가의 작품에는 생동감이 가득 넘친다. 작가는 “민화에는 소통을 통한 시대정신을 일깨우는 지혜가 스며있다” 며 “ 어떤 민화에나 진부한 사고를 넘은 새로운 착상이 가득하다”고 강조했다. 이렇듯 전통과의 소통으로 오늘의 시대정신을 일깨우는 작가는 자유로운 사고의 전환으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독창적 창의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정옥의 작품은 흥취를 불러일으키고 약동하듯 호방하게 열린 탁 트인 화풍으로 부드러우면서도 굳센 고격(高格)의 상징성을 보여준다. 그녀는 “1970년대 소수의 화가들만이 민화작업 하는 것을 보고 맥(脈)을 이어야겠다는 결심으로 30여년간 민화에 매달려왔다”고 소개했다. 이화여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작가는 지난 2000년 서울 포스코 갤러리를 시작으로 17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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