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윤태구 기자=‘위기가 곧 기회’라는 정몽구 현대차그룹회장의 위기극복 DNA가 진가를 발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최근 미국 시장에서 위기에 맞닥뜨렸다.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연비 표기 오류로 인해 거액의 보상금을 물게 된 것.
품질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는 것은 엄청난 손실이다.
실제로 연비 표기 오류는 현대차의 글로벌 이미지 하락은 물론 7700억 원에 달하는 집단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지난달 현대·기아차의 미국시장 월간 점유율은 2년여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국내에서는 역차별 논란마저 일고 있는 상태다.
사태가 커질 기미를 보이자 정 회장의 즉각적인 결단이 내려졌다.
우선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현대·기아차의 연비를 평균 3% 낮추도록 권고하자 이를 받아들여 바로 연비 라벨을 교체했다.
또한 발 빠르게 사과문을 게재하고 소비자 포상 프로그램 등으로 미국 소비자의 신뢰 회복에 나섰다.
현대·기아차의 품질을 책임지고 있는 연구소 주요 임원도 전면 교체했다.
토요타가 대규모 리콜 사태로 번지고 혼다가 연비소송까지 불사하며 장기간에 걸쳐 소비자와 싸웠던 것과는 다르다.
정 회장은 직접 미국 시장 챙기기에도 나섰다.
정 회장은 지난 7일 현대차 미국법인을 방문해 현지 상황 파악하는 등 위기경영에 나섰다.
정 회장은 오히려 이번 사태를 재도약의 기회로 삼고 이미지를 더욱 좋게 가져 가도록 더욱 노력하면 전화위복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연비 과장 사태에도 불구하고 미국 시장에 공급되는 물량은 재고로 쌓이기는 커녕 오히려 부족한 상황이다.
그리고 새로운 기회가 다가왔다.
정 회장은 9일(현지시간) 중남미 최대 자동차 시장인 브라질에 현지공장을 준공하며 10여년 간 추진해 온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에 방점을 찍으며 위기를 극복할 기회를 만들었다.
현대차는 이번 브라질 공장 준공을 통해 향후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를 통해 유연한 생산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갖췄을 뿐만 아니라 현대차의 브랜드 위상을 앞세워 중남미 전체 자동차 시장 공략에까지 적극 나설 수 있게 됐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정 회장의 ‘스피드 경영’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미국 시장에서 발생한 위기 상황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선제적으로 적극 대응하며 소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는 것.
이는 미국 시장에서의 위기를 쉽게 극복해나갈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이기도 하다.
실제로 현대차는 이번 브라질 공장까지 선진국과 신흥국을 아우르는 생산 기지를 바탕으로 한 글로벌 생산 시스템 속에서 파업이나 생산 중단 등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체질을 갖추게 됨 셈이다.
특히 현대차는 이번 브라질 공장 가동으로 브릭스 지역 4국가 모두에 현지 공장을 갖추게 됐다.
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로 대표되는 브릭스 국가의 자동차 수요는 최근 글로벌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브릭스 4개국의 판매량은 2515만여대로 전 세계 자동차 수요의 34.1%를 차지하는 거대 시장이다.
더구나 지난해 글로벌 경기 침체 영향으로 전 세계 자동차 산업수요가 불과 4.8% 성장한데 반해 브릭스 4개국의 판매는 이보다 높은 8.5%의 성장세를 보였다.
앞서 정 회장은 미국·유럽에서는 공급물량을 제한한 반면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중국에서는 오히려 물량을 확대하는 역발상 경영전략을 취한 바 있다.
이후 현대·기아차의 연 생산규모가 100만대를 돌파하고 지난 9월 시장점유율이 10%까지 치솟자 정 회장의 역발상 경영전략은 제대로 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가 이번 미국 시장에서의 연비 문제로 위기를 맞이할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정 회장의 빠른 판단과 글로벌 시장에 대한 신속한 결단력이 현대·기아차가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삼아 더욱 성장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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