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시진핑 광둥시찰로 부친 시중쉰 업적 재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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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12-1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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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베이징 특파원 조용성 기자 =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광둥(廣東)성 시찰로 인해 아버지인 시중쉰(習仲勳)의 업적이 다시금 부각되고 있다. 시 총서기의 이번 시찰이 아버지를 기리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홍콩 봉황TV의 총편집인인 뤼닝쓰(呂寧思)는 봉황TV의 ‘총편집시간’이라는 코너에 출연해 “선전(深圳)은 1978년 시진핑의 아버지인 시중쉰이 서기로 있으면서 특구로 개발되기 시작했다”며 “이번 시찰은 아버지를 기리고 존중하는 뜻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시 총서기는 지난 달 제18차 당대회 이후 첫번째 지방시찰지로 광둥성을 선택해 닷새 간 선전, 주하이(珠海), 포산(佛山), 광저우(廣州)등지를 둘러봤다. 덩샤오핑(鄧小平)이 1992년 선전, 주하이, 포산 등을 순회하며 개혁개방을 강조한 일정과 그대로 겹친다.

시 총서기는 이번 시찰기간에 반복적으로 “개혁개방은 옳은 결정이었으며 개혁개방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천명했다. 그는 또한 선전에 있는 덩샤오핑의 동상앞에서 “우리는 동상을 우러러보며 개혁개방을 흔들림없이 추진해 나갈 것을 선언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같은 행보에 시진핑의 광둥시찰은 덩샤오핑의 ‘남순강화’에 비견됐다.

하지만 시진핑의 광둥시찰이 길어지면서 광둥성의 개혁개방을 기획한 사람이 덩샤오핑이 아닌 자신의 아버지인 시중쉰이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고 있다. 1978년 광둥성 서기로 발령받은 시중쉰에게 최초로 부여된 업무는 광둥성 주민의 홍콩 밀항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1978년에만 약 5만 명의 밀항자가 구속됐다. 하지만 당시 광둥성 주민들은 홍콩에 가면 100배의 월급을 받을 수 있었기에 위험을 무릅쓴 밀항을 지속했다.

시중쉰은 당시 “홍콩과 경계선은 한 눈에 알 수 있다. 건너편의 논밭은 청색으로 우거져 있고, 이쪽은 황색의 땅만 보일 뿐이었다. 이는 중국의 제도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그리고 시중쉰은 선전, 주하이, 산터우(汕頭)를 특구로 설립해야 하며 특구설립 없이는 밀항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중쉰의 제안을 덩샤오핑은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이 때부터 중국의 개혁개방이 시작된다.

뤼닝쓰는 “시중쉰이 선전특구의 창시자”라고 단언했다. 그는 이어 “시진핑의 이번 광둥시찰은 국내적으로 광범위한 인민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으며, 국외적으로 해외 투자자들과 매체들에게 개혁개방에 대한 안정감을 부여하고 있다”고 평가한 뒤 “이와 함께 자신의 아버지인 시중쉰의 업적을 돌아보게 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시중쉰이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와 각별한 사이였다는 점에서 후야오방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가능성도 주목되고 있다. 이미 시진핑은 총서기에 오르기 전인 지난 7월 후야오방의 아들인 후더핑(胡德平)을 만난 것으로 전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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