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향을 탐하는 추석맞이 전통주 순례>400년 전통의 순곡 증류주, 남한산성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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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09-20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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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소주-한국관광공사 제공


아주경제 기수정 기자=집집마다 김치를 담가 먹듯 술을 빚어 먹던 때가 있었다. 손맛도, 물맛도 제각각이었을 테니 고개 하나 넘으면 술맛이 달라졌다는 말이 과장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가양주의 전통은 일제강점기에 주세법이 시행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술을 빚으려면 면허를 내고 세금을 납부해야 했으니 버틸 재간이 없었다. 1934년 자가용 술 제조 면허제가 아예 없어져 집에서 빚은 모든 술이 밀주(密酒)가 됐고 1965년 양곡관리법에 따라 쌀로 술 빚는 것이 금지되자 쌀이 주원료인 전통주는 거의 맥이 끊긴다.

1990년 민속주 제조 허가와 함께 가까스로 몇 종류가 기사회생했는데, 이때 살아난 술이 잘 알려진 안동소주, 이강주, 문배주다. 하지만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름을 날리던 명주가 어디 이뿐이랴.

삼국시대 이래 역사상 전략적 요충지였던 남한산성에는 조선 선조 때부터 빚어 먹었다는 ‘남한산성소주’가 400년째 이어져 내려온다.

그 맛과 향을 재현해 세상에 내보낸 사람은 경기도 광주의 강석필 옹이다. 남한산성에서 대대로 술을 빚어온 이종숙이라는 이가 술도가를 그만두면서 강석필 옹의 부친(1971년 작고)에게 비법을 전수했고 강석필 옹이 아버지에게 배운 제조법을 재현해 1994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13호(남한산성소주 제조기능)로 지정됐다.

남한산성소주는 알코올 도수 40도의 증류주다. 요즘 우리가 마시는 소주가 농축된 증류액에 물과 감미료, 향신료를 섞은 희석식 소주인 데 반해 전통 소주는 순수하게 곡물로 만들었다.

화학 성분이 섞이지 않아 알코올 도수가 높아도 숙취가 없고 깔끔한 것이 특징이다. 남한산성소주에는 쌀과 누룩, 물 이외에 독특한 재료가 한 가지 더 들어간다. 재래식으로 고은 조청이다. 조청이 독특한 맛과 그윽한 향을 더하고 저장성도 높인다. 누룩을 빚을 때 한 번, 백미를 쪄서 식힌 지에밥에 누룩과 물을 섞어 밑술을 만들 때 또 한 번, 덧술을 빚을 때 한 번 더 들어간다.

이렇게 두 번 빚어 발효시킨 술은 맑게 떠내면 약주, 탁하게 걸러내면 탁주가 된다. 소주는 발효주인 약주나 탁주와 달리 증류 과정을 거친다.

전통적인 방법은 소줏고리를 사용하는 것이다. 원액을 소줏고리에 넣고 불을 지피면 증발해 위로 올라가는데, 소줏고리 맨 위의 냉각수 그릇에 닿아 식으면서 이슬처럼 맺힌 원액을 받은 것이 소주다. 요즘은 소줏고리 대신 현대화된 기계를 쓰는데, 온도를 균일하게 맞추고 완벽한 진공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 맛이 더 좋다고 한다.

현재 남한산성소주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들 강환구 씨가 운영한다. 전통주가 아무리 좋아도 누구나 쉽게 접하고 즐겨 마시지 못하면 소용없는 일. 사명감만으로 전통을 이어가기에 어려움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강환구 씨는 남한산성소주를 알리기 위한 노력과 함께 탁주 생산에도 공을 들인다. 2010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신데렐라 언니〉의 배경에 등장한 ‘참살이탁주’가 그의 작품이다.

지금은‘참살이막걸리’로 제품명을 바꾸어 생산 중이다. 100% 국내산 친환경 무농약 쌀로 만들어 지역 농가에 큰 도움이 되며, 일본과 미국(뉴욕) 등에 수출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 막걸리로 발효·숙성시킨 쌀 찐빵도 인기다. 참살이막걸리는 대형 마트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지만, 남한산성소주 맛이 궁금하다면 남한산성 행궁 앞 기념품 판매점을 찾아야 한다.

나선 김에 남한산성 안의 역사적인 장소 몇 군데를 둘러보고 가벼운 산책을 즐겨보자. 남한산성 행궁(사적 480호)은 유사시에 임시 궁궐로 사용하기 위해 1626년(인조 4) 건립됐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47일간 항전한 곳으로, 그동안 터만 남아 있다가 10여 년 복원 과정을 거쳐 정문 한남루, 공무를 집행하던 외행전, 생활공간 내행전, 좌전(종묘) 등 주요 전각을 되살렸다.

남한산성 탐방 코스는 짧게 1시간에서 길게는 산성 전체를 한 바퀴 도는 3시간 20분 코스까지 5개가 있다. 아이들도 힘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는 편안한 길이라 어떤 코스를 택해도 무방하며, 서울 남산까지 시원하게 펼쳐지는 전망이 압권이다. 남한산성에는 역사적인 명소가 수두룩한데, 병자호란 때 인조가 직접 군사를 지휘해 청나라 군대에 맞선 수어장대(경기도 유형문화재 1호)가 대표적이다.

경기도자박물관과 영은미술관도 가볼 만하다. 광주는 조선 시대 왕실 식사 등 부엌살림을 책임지던 사옹원의 분원이 설치된 곳으로, 이 지역에서 조선 500년간 왕실에 진상한 고급 백자를 구웠다. 곤지암도자공원에 자리한 경기도자박물관은 조선백자를 비롯해 우리나라 도자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는 물론, 도자 인형 색칠하기, 기왓장 그리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공원에 갤러리, 북카페 등이 마련되어 가족 나들이 장소로 손색이 없다.

영은미술관은 다양한 기획전과 개인전을 통해 동시대 현대미술의 흐름을 소개하는 사설 미술관이다. 작품 전시에 그치지 않고 아이들은 물론 학생과 어른을 대상으로 한 교육·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현대미술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잣나무 숲에 둘러싸인 잔디광장은 조각과 설치 작품을 위한 공간이다.

여유가 있으면 남종면 산수로의 분원백자자료관에 들러보자. 조선의 마지막 왕실 가마터에 있던 폐교를 리모델링해 작은 자료관에 발굴 당시의 지층과 도자기 파편 등을 재현·전시했다. 팔당호가 인근에 있어 드라이브를 즐기기 좋고, 팔당수질개선본부 9층에 위치한 팔당전망대는 연중 무료로 개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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