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에도 금융사들이 M&A 시장에서 격돌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승자의 저주(M&A에 성공했지만 과도한 비용으로 오히려 경영이 악화되는 현상)'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쏟아지고 있다.
그동안 국내 주요 은행들이 M&A를 통해 성장해온 게 사실이지만, 무모한 몸집 불리기와 지나친 가격 거품은 언제라도 '승자의 저주'를 불러올 수 있으므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승자의 저주' 상징이 된 건설업계
'승자의 저주'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건설업계다. 대표적인 사례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 인수다. 2006년 금호아시아나는 6조4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들여 대우건설을 인수했다. 하지만 무리한 입찰가격을 감당하지 못했고, 결국 대우건설은 산업은행에 돌아갔다.
사업 영역을 확장하며 성장가도를 달리는 듯 보였던 프라임그룹 역시 무리한 M&A에 발목이 잡혔다. 프라임그룹은 동아건설과 삼안을 인수한 후 재무위기를 겪다 2011년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2012년 부도가 난 웅진그룹 역시 M&A가 문제였다. 웅진그룹은 2007년 론스타로부터 6600억원에 극동건설을 인수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극동건설은 유동성 위기를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그룹 전체가 몰락했다.
STX그룹은 M&A로 성장해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STX는 범양상선(STX팬오션), 대동조선(STX조선해양) 등을 인수하면서 급성장했다. 하지만 2007년 세계적인 크루즈선 건조사인 아커야즈(STX유럽)를 무리해서 인수한 후 어려움을 겪었다. STX그룹은 사실상 해체된 상태다.
◆M&A로 성장한 4대 은행…저주는 없다?
많은 중견기업과 건설사들이 무리한 M&A로 몰락했지만, 국민·신한·우리·하나 등 4대 시중은행은 M&A로 몸집을 키워 지금까지 승승장구 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대동·동남·장기신용·주택은행 등, 신한은행은 동화·조흥·충북·강원은행 등, 우리은행은 한빛(상업·한일)·평화은행 등을 인수하면서 성장했다. 하나은행은 충청·보람·서울은행에 이어 지주사가 외환은행까지 인수하면서 4대 은행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과거 은행권은 이른바 '조상제한서(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로 불렸었지만, 제일은행마저 스탠다드차타드그룹에 인수되면서 '조상제한서'는 국내 금융권의 역사에만 남게 됐다.
이처럼 4대 은행이 M&A로 성장했지만, 그렇다고 금융권에서 '승자의 저주'에 대한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금융그룹이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 자칫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또 KB금융그룹이 우리금융그룹을 인수해 메가뱅크를 추진하려 했을 때에도 무모한 M&A란 분석도 있었으며, 국민은행 노동조합 역시 오히려 경영을 악화시킬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KB금융이 ING생명 한국법인 인수를 포기한 것도 일부 사외이사들이 보험업계의 불황을 우려해 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부실한 저축은행을 인수한 금융지주사와 증권사들도 '승자의 저주'에서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 웅진그룹 역시 서울저축은행을 인수했지만, 서울저축은행은 지난 9월 파산했다.
◆M&A열풍…저주에 빠지지 않으려면
올해도 금융권에는 M&A 이슈가 넘쳐난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권에서 M&A의 순기능을 무시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박 연구위원은 "단계적으로 M&A를 성사시킨다면 기존 수수료 수익에 의존하는 천편일률적인 사업에서 벗어나 통합을 통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며 "무조건 M&A가 승자의 저주를 불러일으킨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다만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을 때 M&A 매물이 몰리면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는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적정 가격도 형성되지 않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갈등이 생긴다"며 "경영자 입장에선 시장이 좋을 때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M&A 분위기를 이끄는 금융당국의 역할도 중요한데, 우리나라에 골드만삭스가 없다는 말만 하지 말고 규제를 완화하는 등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연구원의 이부형 연구위원은 "M&A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본업에 충실하도록 인수하는 것"이라며 "M&A 후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피인수 기업에 경영상의 기회를 보장할 필요도 있다"고 조언했다.
적정 인수가격을 따져보는 것도 필수다. 배근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낙관적인 기대만으로 무리하게 자금을 조달하려 해선 안 된다"며 "적정 가격과 자금 조달 능력은 M&A의 기본이자, 승자의 저주에 빠지지 않는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무조건 비싼게 매각하려 하고, 또 일단 인수하고 보자는 욕심 때문에 종종 가격이 왜곡된다"며 "금융권에서 진행되는 M&A는 납득할 만한 조건에서 성사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