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규제를 규제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규제’ 더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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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2-2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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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경련, 사례 개선 건의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규제를 규제로 부르지 못하는 이른바 ‘홍길동 규제’로 인해 기업들이 영업 활동에 큰 제한을 받고 있어, 이에 대한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26일 ‘홍길동 규제’, ‘그림자 규제’로 불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규제로 인해 규제총량제를 도입하더라도 기업이 실질적으로 얻게 되는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주장했다.

보이지 않는 규제는 실제로는 개인과 기업의 권리를 제한하지만 그 형식이 법에 근거하지 않는 규제를 뜻 한다. 또 다른 의미로는 법적 근거 없이 행사되는 행정(공공)기관의 침익적 권력행위로 풀이되는데, 구두지도·행정지도, 권고·지침, 적합업종, 기부채납, 조세 등이 대표적인 예다.

현재 도입 논의가 진행중인 규제 총량제는 규제 수나 규제로 인한 비용의 상한을 정하고, 규제 신설시 그만큼의 기존 규제를 폐지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그림자 규제는 규제로 등록·관리되지 않기 때문에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제대로 관리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전경련에 따르면 이러한 보이지 않는 규제는 다방면에 걸쳐 존재하고 있다.

2013년 4월 금융감독원은 보험민원을 2년내에 50% 감축하라는 지침을 만들었으나 보험업 현실과 괴리된 무리한 목표라는 보험업계의 반발에 부딪혔다. 이후 금감원과 보험업계 실무자들로 구성된 TF에서 민원감축지수를 평가지표로 활용하는 ‘보험민원감축 표준안’을 만들었다. 법적 근거가 없는 ‘표준안’이지만 금감원에서 매분기 민원감축 이행성과를 평가하고 미 이행시 경영진 면담과 검사를 실시하겠다고 하니 사실상 의무나 다름없다. 양적인 보험민원 숫자 감축을 목표로 하다 보니 부당한 보험금 지급을 요구하는 악성 민원인에게도 속수무책이다.

금감원은 손해율 상승, 금리 하락 등으로 보험상품에서 손실이 발생해도 관행적인 구두지도를 통해 보험료 인상을 억제한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위는 금감원의 보험료 인상 지침에 따른 보험사들을 담합으로 판단해 처벌한다. 금감원의 지도에 따랐지만 공정위의 처벌을 받는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9년 공정위는 국세청의 행정지도에 따른 11개 주류업체를 담합으로 처벌해 과징금 272억원을 부과했다. 법정으로 비화된 끝에 지난 19일 대법원은 주류업체들이 담합을 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자본시장법은 증권사의 건전성 확보를 위해 영업용순자본비율(NCR)을 100% 이상 유지하도록 요구한다. 그러나 금감원 관리 기준은 NCR 150%, 국민연금의 거래증권사 선정시 만점 기준은 250%(2013년 12월까지는 450%)로 법보다 더 높은 기준을 적용한다.

증권사들이 안정적인 수수료 수익이 예상되는 국민연금과 거래하기 위해서는 NCR 250%를 유지해야 하는데, 이 경우 해외진출·주식결합증권(ELS) 판매 등 신사업 투자를 위한 투자금을 사용하지 못하고 묶어둬야 한다. 보험사 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비율(RBC)도 보험업법상 100%로 규정되어 있지만 금감원은 법정 수준의 2배인 200% 이상을 유지하도록 권고한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는 중소기업에 적합한 사업영역을 지정해 대중소기업간 동반성장을 도모한다는 목적하에 대기업의 사업진출 기회를 엄격하게 제한한다. 그러나 법으로 규정됐었던 중소기업 고유업종과는 달리 적합업종은 ‘민간합의’를 바탕으로 시행되고 있다.

동반성장위원회와 정부는 자율제도이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이 없는 단순 권고라는 입장이지만 사실상 지키지 않을 수 없다. 동반위는 적합업종 권고 미이행시 중소기업청에 사업조정 신청을 할 수 있는데, 중기청이 권고·공표·이행명령 등을 통해 대기업의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부터 공공기관 구내식당 입찰에는 대기업이 참여할 수 없다. 기업의 시장진입을 금지하는 강력한 규제지만 그 근거는 법령이 아닌 기획재정부 내부 지침이다. 대기업의 소모성자재(MRO) 시장 참여 제한의 근거도 동반성장위의 가이드라인이다.
인허가와 관련된 보이지 않는 규제의 벽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2013년 12월 안전행정부는 인허가 처리실태 특별감사를 통해 7개 지자체에서 총 40건의 부당 인허가 거부·지연사례를 적발했다. 법적 요건을 모두 갖춘 인허가 신청을 반려하거나 불허가 한 사례는 총 40건 중 11건으로 27.5%를 차지했다.

이중에는 법적 요건을 모두 갖춘 건축허가 신청을 구청장의 지시로 불허하거나, 법적 근거가 없는 소유자동의서, 가처분권자동의서 등 과도한 서류제출을 요구한 경우도 있었다. 지자체의 기부채납 요구 역시 사업승인을 담보로 요구되는 보이지 않는 규제다. 기부채납을 관철시키기 위해 사업승인을 지연시키는 경우도 빈번하다.

납세의무는 헌법이 정하는 의무로 국민의 재산권을 제한한다. 그러나 조세의 종목과 세율, 부과 및 징수에 관한 사항은 행정규제기본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기업 지배구조 및 상거래를 규율하고 있는 상법은 특정한 행정목적 실현을 위한 내용이 아니라는 이유로 행정규제로 보지 않고, 이에 따라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사·등록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이들 법률은 국민과 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사항이지만 규제개혁위원회에 등록되지 않아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고, 규제개혁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기업들이 원하는 규제개선 과제의 상당수는 상법·조세 관련 내용이지만, 정부가 관리하는 규제대상에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기업과 정부의 규제개혁 체감도 사이의 괴리가 클 수밖에 없다.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부분 중 하나는 원재료비 등 원가인상의 부담을 경영합리화로만 해결하기 원하는 정부의 보이지 않는 압력이다. 원가 인상 등의 합리적인 가격 인상 요인이 발생한 경우에도 정부 당국자의 발언을 통해 가격인상을 억제하는 경우도 있다.

고용이 전경련 규제개혁팀장은 “국민과 기업의 권리를 제한하고 의무를 부과하는 사실상 규제들이 많지만 규제로 등록되지 않아 규제개혁의 대상과 관심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며, “국민과 기업이 느끼는 규제개혁 체감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행정지도, 권고·지침 등 보이지 않는 규제도 등록․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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