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지신'이라고 했던가. 약 38년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미국 XTM 'Saturday Night Live'(이하 'SNL')을 원작으로 한 'SNL코리아'는 다섯 번의 시즌을 맞이하기까지 원조를 바탕으로 새것을 만들었다. 미국판 형식에 한국판 웃음을 가미하면서 그동안 방송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19금 섹시 유머와 병맛 코드, 통쾌한 풍자를 더해 새로운 문화코드를 제시했다.
게스트는 추측을 불허했다. 김주혁을 시작으로 김상경, 예지원, 양동근, 조여정, 오지호 등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치지 않았던 스타들이 줄줄이 출연하면서 시청자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안에서 즐기는 스타들은 'SNL코리아' 마니아를 양산하는 데 일조했다.
'SNL코리아'를 처음부터 기획하고 총괄 지휘한 안상휘 CP는 최근 인터뷰에서 "단순한 예능은 하고 싶지 않았다. 드라마와 예능적 요소가 합쳐진 'SNL'에 꽂혔다"고 말했다. 'SNL코리아'는 KM 채널 개국 멤버로 활약하면서 각종 예능 프로그램과 뮤직비디오를 도맡았던 안 CP에게도 매너리즘 탈피의 기회이자 도전이었다.
토요일 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SNL 코리아'는 출발과 동시에 숱한 화제를 낳았다. 방송되기만 하면 네티즌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비일비재했고, 출연자의 어록집이 따로 만들어질 정도로 큰 파장이 일었다. 정치계를 향한 날 선 비판과 풍자는 젊은 층의 강한 지지를 이끌어내며 토요일 밤 안방극장을 장악했다.
문제는 지금에 있었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풍자에서 독기는 사라졌고, 기대했던 해학은 줄어들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일각에서는 "예전만 못하다"는 볼멘소리를 내놓기도 한다.
안 CP 역시 대중의 질타를 수긍했다. "방송 초반에 비교했을 때 풍자나 해학이 줄어든 것은 맞다"고 인정하면서도 "상황이 변했다"고 말했다. 정치적 세대교체를 눈앞에 두고 있었을 때와 현 정권이 자리 잡은 지금과는 상황적 요소가 다르다는 것. 지금은 정치적 색깔이 확연히 다른 두 집단의 생각을 서로 인정해야 할 때라고 했다.
"원래 'SNL 코리아'를 대표하던 19금이나 풍자가 약해졌다는 지적을 들으면 많이 속상해요. 그런 점에서는 저도 고민이 많았어요. 방송 초반 정치적 색깔이 다소 강했던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우리가 하는 비판이 불편하다는 시각도 있더라고요. 많은 단체로부터의 항의도 잦았죠. 아직까지도 흑백논리가 강한 우리나라 문화의식이 조금 더 성숙한다면 더 강한 풍자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죠."
"방송을 시작하기 전에는 '젊은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도록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모든 생활이 정치와 밀접한데 다들 무관심한 것 같았죠. 'SNL 코리아'가 방송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시작했어요. 그런 면에서는 'SNL 코리아'가 어느 정도 일조한 것 같아요."
시청률이냐 풍자냐를 두고 고민과 갈등을 반복했던 안 CP는 최근 미국으로 견학을 떠났다. 현지에서 'SNL'를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프로그램에 반영하기 위함이었다. 신동엽, 유희열과 함께 확인했던 'SNL' 현장은 문화충격 그 자체였다. 실제 정치인이 출연하는 것도 놀라운데 그들이 방청객에게 조롱거리가 된다는 것은 상상 이상의 충격이었다.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미국에 다녀온 후 완전히 달라졌죠. 신동엽 씨는 녹화할 때 눈빛이 달라졌어요. 조금 더 방청객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려고 하죠. 하드웨어적인 시스템도 바뀌었어요. 방청객과 더 가까워졌고, 그들의 반응 하나하나를 담아낼 수 있게 됐죠."
안 CP는 19금 코드와 정치 풍자를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가에 대해 여전히 고민했다. 'SNL 코리아'만의 날 선 색깔은 고수하면서도 누가 봐도 공감할 수 있고 이해 가능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도 했다. 혹여 누군가가 '정치 풍자가 약하다'고 지적한다면 '누가 그래?'라고 답할 수 있도록 말이다. 안 CP의 고민에 힘입어 날개를 단 'SNL 코리아'의 힘찬 날개짓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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