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이상민 법제사법위원장 “개헌 적기? 현 정치풍토 미성숙해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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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1-1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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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석유선 기자 = 지난해부터 정치권에 불어온 개헌 바람이 새해 들어서도 좀처럼 잦아들 줄 모른다. 여야를 막론하고 큰 선거가 없는 올해야말로 “개헌의 적기”“개헌 골든타임”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는 탓이다.

여당 대표가 지난해 상하이발(發) 개헌 발언으로 곤혹스럽게 되면서 잠시 논의가 주춤했지만, 지난 연말 정국을 뒤흔든 ‘정윤회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파문으로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면서 다시 힘을 받고 있는 것이다.

개헌에 대한 목소리는 커지고 있는 만큼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신중론도 만만찮다. 야당의 3선 중진 의원이자, 마지막 법안 통과 관문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수장을 맡고 있는 이상민 법제사법위원장(새정치민주연합·대전 유성구)의 생각이 궁금했다.

이 위원장은 아주경제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개헌을 논의하기엔 우리 정치가 아직은 숙성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뼈 깊은 자성 없이는 쉽게 할 수 없는 말이다. 풍채만큼 묵직한 그의 목소리에 새삼 귀를 기울이게된 이유다.

이상민 법제사법위원장이 서울 국회에서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사진=남궁진웅 기자 timeid@]


◆개헌, 장기적으로 국민적 에너지 결집해야 가능

1987년 6월 항쟁으로 직선제 개헌이 된 뒤, 지난 27년간 수많은 개헌 논의가 있었다. ‘5년 단임 대통령제’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유독 지난해부터 개헌 속도론이 탄력을 붙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현역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CBS)에서도 총 249명 중 231명이 “개헌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힐 정도였다. 90%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로 국회 개헌안 의결 정족수 2/3(200명)를 훌쩍 넘긴 지지도를 보인 것이다.

그런데 개헌의 구체적인 모델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생각은 엇갈렸다. 복수응답을 포함해 응답 256건 가운데 ‘4년 중임제’는 104건으로 39.2%였고 ‘분권형 대통령제’는 94건으로 전체응답의 35.4%, ‘내각제’는 33건으로 갈렸다.

이상민 위원장은 이같은 결과를 바탕으로 “개헌을 논의하려면 아직 우리 정치풍토가 숙성되지 못했다”면서 “87년 체제의 산물인 현행 헌법의 보완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개헌의) 실현가능성은 현재로선 거의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개헌을 통한 정부 형태에 대해서도 의원들 생각이 내각제, 분권형 대통령제 등 가지가지”라면서 “이전의 개헌은 혁명이니 정변 등에 의해 가능했지만, 이제는 국민이 모두 공감하는 헌법을 만들어야 하는 만큼 장기간 신중하게 논의할 문제”라고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이 위원장은 특히 “올해가 개헌 적기라고 하지만, 개헌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논의하려면 국민적 에너지를 결집시켜야 한다”면서 “즉 무엇보다 국민적 공감대를 구축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사전작업이 선결 과제”라며 개헌을 위한 초당적인 국민적 논의기구를 제안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 논의에 대해 ‘경제 블랙홀’이 될 것이란 우려에 대해서도 공감을 표했다. 이 위원장은 “야당도 비선실세 의혹 규명, 선거구제 개편, 남북통일 등 숙제가 많은데 개헌 논의에 풍덩 빠져서 화급한 현안들을 못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개헌은 한 두달, 1~2년 논의해서 해결될 수가 없다. 긴호흡을 가지고 좀 돌아가더라도 차분히 접근하는 것이 결국 개헌 성사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거듭 신중론을 폈다.

이 위원장은 “검찰이 비선실세 관련 중간 수사결과발표를 했지만 박관천과 조응천의 일탈에 불과하다고 결론지으려 하는데, 국민들의 대부분은 이를 납득하지 못하고 의혹의 시선이 여전하다. 검찰이 진상규명을 제대로 했다면 야당이 특검을 주장하며 나설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사진=남궁진웅 기자 timeid@]


◆‘특검’ 만병통치약 아니지만…국민의혹 해소해야

개헌 신중론을 내놓은 이 위원장이지만,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논란을 다시금 야기한 ‘정윤회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에 대해서는 국민적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를 위해선 반드시 ‘특별검사(특검)’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위원장은 “검찰이 비선실세 관련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지만 박관천과 조응천의 일탈에 불과하다고 결론지으려 한다. 이에 대해 우리 국민들의 대부분은 납득하지 못하고 의혹의 시선이 많다. 검찰이 진상규명을 제대로 했다면 야당이 특검을 주장하며 나설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특검 무용론’에 대해서도 단호한 입장이었다. 그는 “특검에 대한 찬반양론이 있고, 실제로 과거에 무위로 돌아간 예도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과거에 시험을 잘 못 봐서 성적이 나쁘다고 해서 또 시험을 안 볼 수는 없는 일”이라며 특검의 필요성을 거듭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특검을 주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검찰의 자성까지 촉구했다. 그는 “특검이 매번 제기되는 것은 국민들이 검찰을 있는 그대로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불신을 해소하려면 검찰 스스로 권력욕보다 양심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검찰 내 권력구도를 소재로 한 SBS 드라마 ‘펀치’를 언급하면서 “드라마 속 검찰들의 군상이 참 리얼해 보인다. 일반 국민적 잣대로 보면 드라마속 인물들처럼 정말 파렴치한 검사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양심적인 검사들도 사실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위원장은 “정치권이 아무리 제도적 개혁안을 내놓으면 무엇하나. 제도나 법을 바꾸는 것은 그때 뿐이고 시늉이 될 뿐이다. 검찰의 잘못된 문화와 행태를 바꾸려면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권력지향적인 부나비 같은 사람들이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 검찰에 당부했다.

사회 각계각층의 이해관계가 얽힌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 처리에 대해서도 이 위원장은 신중론에 입각해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남궁진웅 기자 timeid@]


◆벽돌 찍어내듯 ‘마구잡이 입법’ 안될 말

이 위원장은 호방한 성격으로 늘상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이웃아저씨 같은 따뜻함이 있다. 하지만 율사(律士) 출신답게 법 개정을 논의할 때 만큼은 냉정하게 변한다. 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 전 마지막 관문인 법사위 수장이란 중책을 맡고 있으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그는 입법을 할 때 ‘법리성과 충분한 논의과정이 있었느냐’를 제일 원칙으로 삼는다.

민생경제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위해 정홍원 국무총리가 지난 7일 이례적으로 국회 상임위원장을 예방했을 때도 이 위원장은 자신의 원칙을 고수했다. 정 총리는 크루즈법, 마리나항만법 등의 조속한 통과를 요청하며 “엑셀을 밟아달라”고 청했지만, 이 위원장은 “브레이크도 필요하다”고 힘겨루기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당시 정 총리의 방문에 대해 “자동차가 사고가 없으려면 가속을 불이는 엑셀 역할도 중요하지만 브레이크 기능도 잘 작동해야 한다”면서 “국회에는 300명의 의원들마다 다양한 입장을 반영한다. 국회는 그런 다양한 입장이 작동하는 곳이기에 제어기능도 잘 작동해야 한다. 법안의 위험요소가 있는지 잘 살피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잘 다듬어야 할 책무가 특히 법사위원장에겐 있다”고 말했다.

사회 각계각층의 이해관계가 얽힌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 처리에 대해서도 이 위원장은 신중론에 입각한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정무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해 12일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처리되더라도, 국회법에 따른 ‘숙려기간’을 거치지 않아 같은 날 예정된 법사위 전체회의에 회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무원 뿐만 아니라 언론인, 사립학교 교사 등을 대상으로 하는 등 김영란법이 사회 전반에 미칠 파장이 크다는 점을 감안할 때 보다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원칙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국회는 온 국민의 일상과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을 생산하는 곳인데, 공장에서 벽돌 찍어내듯이 만들 수는 없는 일”이라며 “법안을 만들어내도 몇 백개가 위헌 결정을 받기도 한다. 그런 과오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사회적으로 이목이 집중되는 법일 수록 더욱 신중하고 오랜 시간 숙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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