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의 몰락, 기름값 내리자 문 닫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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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1-2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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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치된 주유소 휴폐업, 사회문제로 대두


아주경제 정치연 기자 = #서울 근교에서 10년 넘게 주유소를 운영해 온 한창덕 씨(52·가명)는 당분간 주유소 문을 닫기로 했다. 경기 불황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인근 주유소와 가격 경쟁 심화로 운영할수록 적자만 불어나고 있어서다. 하지만 막상 휴업을 결정한 후에도 해결책은 보이지 않고 있다. 팔자니 구매자를 찾기 쉽지 않고, 폐업하자니 토양정화비용과 철거비 등 1억원 이상의 자금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말에 고민만 늘었다.

주유소가 몰락하고 있다. '주유소를 갖고 있으면 알부자'란 소리도 옛말이 됐다. 국제유가 폭락 여파로 휘발유를 1200원대에 판매하는 주유소가 속속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상당수 중소규모 자영 주유소들이 경쟁에 내몰리며 폐업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처했다.

◆경영난에 문 닫는 주유소 꾸준히 늘어

문을 닫는 주유소는 계속 늘고 있다. 20일 주유소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으로 전국에 운영 중인 1만2498개 주유소 가운데 436곳이 휴업 중이다. 지난해 1~11월까지 폐업한 곳도 226곳에 달했다.

2013년 폐업한 주유소는 310곳, 휴업한 주유소는 393곳이었다. 전국 주유소 숫자도 2010년 1만3004곳에서 2011년 1만2901곳, 2012년 1만2803곳, 2013년 1만2687곳으로 줄어들었다.

휴·폐업 주유소의 증가는 정부의 석유사업 자유화 정책에 따른 거리제한 폐지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부는 1990년대 초반 거리제한을 완화한 데 이어 1995년 아예 주유소 간 거리제한을 없앴다. 수년 전부터는 가격을 낮춘 알뜰주유소와 셀프주유소가 가세하면서 경쟁은 더 격화됐다.

특히 지난해 말부터는 국제유가가 폭락하면서 촉발된 주유소 간 가격 경쟁 심화가 경영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실제 휘발유를 1200원대에 파는 주유소는 사실상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다. 이는 손해를 보더라도 고객을 유치, 경유 판매 등을 통해 이익을 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주유소 업계 관계자는 "수년 전부터 이미 주유소가 포화상태에 이른 상황에서 정부가 기름값을 낮추겠다며 알뜰주유소 개설을 추진하는 등 업계의 제 살 깎아먹기 식 경쟁을 유발한 측면이 있다"며 "전국 주유소를 8000곳 수준까지는 줄어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격 내려라" 압박하는 정부, 유류세 인하는 "안돼"

상당수 주유소가 문을 닫고 이를 방치하면서 흉물이 되는 등 사회문제로 번지고 있지만, 정부는 주유소 휴·폐업에 대한 뚜렷한 대책을 내놓기 보다 오히려 국제유가의 폭락에 기름값을 더 내리라며 주유소를 압박하고 있다.

문제는 기름값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유류세를 인하하는 데는 정부가 난색을 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유소 업계는 정부가 가격 인하를 유도하려면 먼저 세금을 내려야 한다고 맞서고 있지만 정부는 이들의 주장을 외면하고 있다.

한 주유소 업주는 "기름값 인하 폭이 국제유가 하락 폭보다 적은 것은 휘발유 가격의 57%에 달하는 유류세 때문"이라며 "주유소 유통비는 소비자 가격의 7%에 불과해 유가 하락 폭만큼 가격을 내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 7%마저도 카드수수료, 임대료, 일반관리비를 제외하면 실제 주유소 업주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가격을 내리면 주유소는 죽을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기름을 공급하는 정유사도 손을 놓고 있긴 마찬가지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휴폐업 주유소 대책과 관련, "정유사도 허덕이고 있는 상황에서 주유소 운영까지 지원할 여력이 없다"며 "시설비 일부를 대출해주는 경우는 있지만, 직접 운영자금을 지원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는 최근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주유소 폐업 지원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주유소 공제조합을 설립해 조합원 출자금과 정부 보조금 등으로 주유소 폐업 자금을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폐업 지원 방안이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예산으로 폐업 자금을 지원하는 정책이 추진된다면 타 사업자들과 형평성 문제, 혈세 낭비 등의 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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