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배상희 기자 =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춘제(春節·중국의 설)를 앞두고 민생시찰에 나섰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시 주석이 지난 13일 펑리위안(彭麗媛) 여사와 함께 산시성(陝西省) 옌안(延安)시 옌촨(延川)현에 있는 량자허(梁家河)촌을 방문했다고 14일 보도했다.
이 지역은 시 주석이 문화대혁명 시절 7년간 하방(下放·중국에서 당·정부·군 간부의 관료화를 막기 위해 간부들을 농촌 노동현장으로 보냄) 생활을 했던 시골마을로, 시 주석이 량자허촌을 찾은 것은 1993년 이후 22년만에 처음이다.
시 주석은 베이징(北京)에서 태어났지만, 문화대혁명 시기인 1969년 15살의 나이로 '혁명의 성지' 옌안에서 동북으로 80㎞ 떨어진 량자허촌으로 하방돼 22살까지 살았다.
매체는 "15살에 이곳에 왔을 때 나는 갈팡질팡했고 방황했다. 22살에 이곳을 떠날 때 나는 이미 굳건한 인생목표를 설정했고 자신감이 충만했다"는 시 주석이 예전에 쓴 글을 인용해 시 주석과 이 마을의 관계를 설명했다.
특히, 친동생인 시위안핑(習遠平)이 2013년 언론에 기고한 글을 통해 당시 이 곳에서 청년시절을 보낸 시 주석의 고단했던 삶을 엿볼 수 있다.
시위안핑은 이 글에서 1975년 부친 권유로 시 주석이 생활하던 토굴집을 가본 적이 있다면서 "그곳은 이와 벼룩 천지였다"고 회고한 바 있다. 또 시 주석이나 주민들은 수확한 밀알이 최대한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100근의 밀을 어깨에 짊어지고 10리 길을 단숨에 걸어가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회고했다.
이날 시 주석은 아내인 펑리위안을 주민들에게 소개했다. 또 한 주민의 아명을 친근하게 부르며 "잉얼(盈兒)도 많이 늙었네"라면서 수 십년의 세월이 흘러 만난 오랜 친구에게 반가움을 전하기도 했다.
또 시 주석은 마을 어른들을 찾아 자신이 직접 준비한 설 선물과 함께 신년 인사를 전했다. 또 량자허 전람관을 참관하고 산에 올라 마을에 심어진 과수나무를 살펴봤다.
특히, 시 주석은 47년 전 이 마을에 처음 도착했을 당시 자신이 묶었던 토굴집을 둘러보며 “이곳에서 하방 생활을 시작했을 때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 마을 어른들이 밥짓는 법, 일하는 법을 가르쳐 줬다”고 말했다. 또 "당시에는 남포등을 켜놓고 자정까지 책을 봤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가래침을 뱉으면 전부 검은색이었다"고 회고했다.
그가 살았던 동굴집은 현재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유명 관광지로 떠올랐다. 시 주석은 농민, 노동자들과 호흡하면서 실사구시와 인민의 생활을 배웠던 량자허촌에서의 생활이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주민들 또한 이날 "시진핑이 돌아왔다!"며 그를 친근하게 맞이했다. 주민 량야오차이(梁耀才)는 "예전에 부쳐준 돈을 잘 받았다.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오래전에 시 주석은 량 씨의 아내가 중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뒤 1000 위안을 보내준 적이 있다.
매체는 시 주석의 이번 민생시찰 배경과 관련해 "옛 혁명기지가 빈곤에서 벗어나는 상황을 직접 점검하기 위해서"라고 평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시찰 활동에는 '서민들의 어려운 삶을 구석구석까지 이해하는 총서기'의 이미지를 최대한 부각하기 위한 의도도 깔려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시 주석은 지난 2013년에는 춘제를 앞두고 중국에서 가장 가난한 곳으로 알려진 간쑤(甘肅)성 딩시(定西)시 톈자허(田家河)향 위안구두이(元古堆)촌을 방문했다.
또 지난해는 영하 30℃의 추위를 무릅쓰고 중국 변방지역인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군부대를 방문해 엄동설한에 변방 초소를 지키는 장병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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