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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송천 정하건 선생 “호암 이병철 ,‘반도체 정말 힘들었다’ 푸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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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3-08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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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 이병철 회장(왼쪽에서 두번째) 송천 정하건 선생(왼쪽에서 세번째)이 보는 가운데 글을 쓰고 있다.[출처='필묵도정'(정하건저)]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삼성이 반도체에 성공해서 모든 언론에 집중조명을 받았다. 그때 호암이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그전엔 말이 없으셨는데 이날은 반도체에 얼마나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아느냐고 물어보시는 거다. 그러시면서 ‘많이 들었습니다’라고 세 번 연속해서 말씀하시는데 그게 푸념으로 들렸다. 넋두리도 하셨다. 그동안의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고.”

서예가 송천 정하건 선생이 지난해 발간한 자전대담집 ‘필묵도정’에서 밝힌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이야기다. 호암은 인생의 마지막 시기에 서예를 즐겼는데, 송천은 당시 매주 1회씩 7년간 개인 서예 선생으로 지도를 했다.

호암도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송천과의 인연을 언급하고 “먹을 갈고 붓을 잡으면 온 정신이 붓 끝에 집중되고 숙연해진다”며 “스스로 마음을 바로 잡기 위하여 글씨를 쓴다”고 밝혔다.

과묵했던 성격이라 서예 이외의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던 호암이 송천에게 반도체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만큼 반도체 사업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1983년 73세의 나이, 실패하면 그룹 전채를 패망으로 몰 수 있는 반도체(D램) 사업 진출을 선언했으니 결정과 추진 모두 호암에게는 부담일 수 밖에 없었다.

첫 삽을 뜬 뒤 사업이 다른 사업과 비교할 수 없는 거액의 돈이 투입되면서도 구체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결과가 보이지 않자 호암은 기흥 사업장을 방문하면서도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은 쳐다보지도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였다. 스스로 결정한 만큼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없었던 호암은 성공이 눈으로 보일 때까지 혼자서 숱하게 고민을 했고, 서예를 통해 결단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다.

송천은 호암을 지켜보면서 ‘이 분은 뭐가 뛰어나고 훌륭해서 이렇게 되셨나?’하고 연구해 봤다고 한다. 그 결과, 확고한 기업관 ‘기업보국(企業報國)’을 갖고 있었고, 주도면밀한 시간관리를 하며, 정확한 인재의 쓰임새를 알고 사람을 관리하는, 사람 보는 혜안을 갖춘 분이라고 전했다.

호암은 송천에게 ‘경제애국(經濟愛國)’ ‘경제보국(經濟報國)’ ‘경제입국(經濟立國)’ 등을 체본으로 써달라고 한 뒤 이를 호암 만의 스타일로 작품을 했다고 한다. 그가 서예를 한다는 소식이 그룹 내에서 알려지자 계열사에서 글을 받고 싶다는 요청이 늘어났다. 이에 호암은 이들 글씨를 자신의 서체로 써서 작품들을 내려줬다. 호암은 자신의 서체를 ‘특별하지도 않고 어중간하다’고 겸손해 했으나 스승인 송천은 “그분의 심성대로 글씨도 자상하고 고왔다. 글씨를 쓸 때는 대범하게 썼다”고 평가했다. 더불어 호암은 ‘공수레공수거(空手來空手去)’ ‘성자필쇠(盛者泌衰)’ ‘인재제일(人材第一)’ ‘무한탐구(無限探求)’ 등을 제일 많이 썼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키워낸 반도체는 20세기말 이후 삼성의 성장을 이끌었고, 스마트폰 사업 부진으로 침체에 빠진 지난해에도 삼성전자는 물론 삼성그룹을 지탱하고 있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잡고 있다.

반도체가 성공한 뒤 송천이 “이제 성공을 거두셨으니 건강을 챙기시고 서예를 더욱 열심히 하시죠?”라고 이야기 하자 호암은 손사레를 치며 “이제 겨우 1단계가 됐지만 아직 2단계, 3단계가 있다”고 하셨단다. 반도체나 유전공학을 열심히 연구하고 개발해서 서구 열강들을 따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호암의 이 말은 초일류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해 삼성그룹이 쉴새없이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어야 하며, 기업은 사업성공을 통해 국가경제를 키우는데 일조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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