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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래 OK시골 대표(시인)]
아버지는 늘 농사만 지으셨다
산비탈 한 뙈기와 다락 논 몇 개를
바닥이 헤지도록 쓸고 닦아
싸리 대궁이 하나 꽂을 틈도 주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것들만 길렀다
그러고도 먹을 것이 모자란
느티나무 그늘로 감자가 크지 못한다고
잎 넓은 느티나무를 베었다
밭둑의 벚나무도 그렇게 베어질 때
나는 보았네 꽃망울의 눈물을
볕 한 뼘 늘여 얼마나 더
가족들의 배고픔을 거둘 수 있었을까
눈물 글썽이던 꽃망울을 가슴에 묻던 날
아버지는 이해할 수 없는 전사
너를 이겨야만 하는 톱을 든 검투사
어느 날 전설이 되고
아버지가 배고픔을 심었던 다락논 언덕
아버지가 벤 느티나무를 다시 심고
울 밑엔 전사의 톱날에 꽃망울 글썽이던
벚나무를 눌러 심는다
아버지가 볕을 쫓아 감자를 심던 산비탈
날아갈 듯 서양식 집을 짓고
그러고도 남는 텃밭에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감자를 심고
배추를 심고 고추도 심고
시를 쓰듯 고구마를 심으며 그리는
장작 난로에서 노릇하게 구워질
달콤하기만 한 겨울 이야기
그러다 점점 아버지의 얼굴을 닮는 감자
배추가 아버지의 손등을 닮아갈 때 울컥
언덕 위 내가 심은 느티나무를 베고 싶었다
배고파 나무를 베던 아버지의 전쟁
목메도록 울밑 벚나무 허리를 베고
그가 그랬듯 전설이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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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을 하며 작은 텃밭이라도 있으면 농사를 짓게 된다. 내 식탁에 올릴 채소도 기르고 손님들과 삼겹살 파티를 하기 위한 상추도 심는다. 유유자적 시를 쓰듯 농사를 짓는다. 하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농사는 곧 전쟁이었다. 자식들 생사가 달린 문제였기에 늘 전투를 하듯 농사를 지었다. 그래서 밭가나 밭둑의 나무도 곡식들에게 그늘 된다고 크기가 무섭게 잘랐다. 그게 늘 불만이었는데 나이가 들어보니 그 처절했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올 봄 내 텃밭은 무엇을 심을까 고민이다. 감자를 심어야겠다. 아버지가 그랬듯 전쟁을 치르듯 길러 시장에 내다 팔아야겠다. 그래서 올해 감자농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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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을 가꾸며 [사진=김경래 OK시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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