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서윤 기자 =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북한 체제를 통렬하게 비판한 북한 현역작가를 노벨문학상 후보로 만들기 위한 모임이 미국 뉴욕에서 결성됐다.
미주 탈북자선교회 마영애 회장과 미주 탈북자인권협회 최은철 회장 등 20여 명은 17일(현지시간) 뉴욕 플러싱의 한 식당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북한판 솔제니친인 반디(필명) 선생을 노벨문학상 후보로 만들기 위한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솔제니친은 스탈린 시절 강제수용소의 실태를 고발한 ‘이반 데니스비치의 하루’로 197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다. 소련에서 이 소설을 쓰고 외국에서 발표했다는 이유로 1974년 추방당했다.
반디는 북한의 공인 작가 단체인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으로 그의 신변 안전을 고려해 실명은 공개되지 않았다. ‘반디’라는 필명은 “북녘땅의 자유를 밝히는 반딧불이 되겠다”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반디가 지인에게 비밀리에 보낸 원고는 한국에서 ‘고발’이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5월 출간됐다. 탈북자들이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책을 펴낸 적은 있지만 북한에 사는 작가의 작품이 북한 이외에서 출판된 것은 처음이다.
332쪽 분량의 ‘고발’은 1990년대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이 통치하던 시절 배고픔 때문에 죽어가는 주민들의 생활과 북한 사회의 비리·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풍자하고 있다. ‘탈북기’ ‘유령의 도시’ ‘준마의 일생’ ‘지척만리’ ‘복마전’ ‘무대’ ‘빨간 버섯’까지 총 7개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출판사 서평에 따르면 ‘탈북기’는 대물림되는 출신 성분제에 절망하며 탈북을 결심하는 이야기를, ‘유령의 도시’는 김일성 초상화를 보고 경기를 일으키는 아이 때문에 덧커튼을 달았다가 평양에서 추방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어 해방 후 첫 공산당원으로 사회주의 건설에 매진하던 ‘마차 영웅’이 공산주의의 미래가 신기루였음에 좌절하는 ‘준마의 일생’, 죽어가는 어머니를 지척에 두고도 여행 제한으로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아들의 사연을 다룬 ‘지척만리’, 길을 가다 우연히 김일성을 만난 할머니가 ‘어버이 수령님’의 자애로움을 선전하는 자료로 이용되는 과정을 그린 ‘복마전’, 보위부원 눈에 비친 북한 체제의 연극성을 담은 ‘무대’가 나온다.
마지막 단편인 ‘빨간 버섯’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산실인 당사를 타도하자”는 반디의 외침이 담겼다고 출판사는 전했다.
반디는 책의 표지에 “북녘땅 50년을 말하는 기계로, 멍에 쓴 인간으로 살며, 재능이 아니라 의분으로, 잉크에 펜으로가 아니라 피눈물에 뼈로 적은 나의 이 글”이라며 “사막처럼 메마르고 초원처럼 거칠어도, 병인처럼 초라하고 석기처럼 미숙해도 독자여! 삼가 읽어다오”라고 적었다.
미주 탈북자선교회 마영애 회장은 “‘고발’을 영문판으로도 발간할 계획”이라며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룬 문학작품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는 한편 전 세계인을 북한 인권 개선에 나서도록 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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