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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매니지먼트 이상]
최근 KBS2 드라마 ‘후아유-학교2015’(극본 김민정 김현정·연출 백상훈 김성윤) 종영 후 아주경제와 만난 강소영은 악독한 소영의 얼굴을 벗고, 다시금 말간 얼굴을 드러낸 채였다.
“이 정도로 미움받을 줄 몰랐어요(웃음). 평소 연기하던 것처럼 했을 뿐인데 첫 방송 이후 욕을 무진장 먹었죠. 악역이다 보니 어느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지만 진짜 울컥할 정도더라고요.”
‘후아유’는 2015년을 살아가는 열여덟 살의 학생들이 겪는 솔직하고 다양한 감성은 물론, 그들과 함께 성장하는 선생님과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담아낸 청춘 학원물이다. 극 중 조수향은 이은비(김소현)을 따돌리고 괴롭히는 강소영 역을 맡아 열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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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유) 학교2015 문화산업전문회사,FNC 엔터테인먼트]
“사실 시나리오 속 소영이는 완전히 사기 캐릭터였어요. 집도 잘 살고, 공부도 잘 하는데다가 예쁜 외모라고 설명돼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소영이 역할을 맡게 되면서 예쁜 것보다는 착하고 평범해 보이는 얼굴로 나쁜 짓을 일삼는 캐릭터로 바뀌었죠. 저도 그러길 바랐고, 감독님도 그게 더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하셔서 수정 된 것 같아요.”
그야말로 악독한 아이였다. 특별한 이유 없이 자신의 신경을 거슬렸다는 이유로 은비를 따돌리고 그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그의 계략으로 퇴학당하게 된 은비가 자살을 시도하고 따돌림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그는 죄책감 대신 원망을 품는다.
이토록 악랄한 행동보다 놀라운 것은 강소영은 조수향의 ‘첫 악역’이라는 사실이다. 독립영화계에서는 꽤 익숙한 얼굴인 강소영은 2014년 영화 ‘들꽃’으로 데뷔해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한 탄탄한 연기력의 소유자다.
“드라마와는 달리 독립영화에서는 늘 억압당하고 상처받는 대상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강소영은 “사연 있고, 억압당하고, 짓눌리는 그런 것들”이라며 호쾌하게 웃었다.
“힘든 역할이 많았죠. 함께 독립영화를 했던 지인들도 제 악역 연기에 깜짝 놀라요. ‘어쩌다가 국민 악인이 되었느냐’면서요. 그분들은 워낙 TV를 안 보시니까 제 모습이 생소했나 봐요. 지난 작품들이 워낙 안쓰러운 역할들이기도 했고요.”
주로 피해자를 연기해왔던 조수향에게 어쩌면 가해자 역할은 낯설었을지도 모르겠다. “첫 악역을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했냐”고 묻자 그는 “악역이라는 생각을 아예 지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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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매니지먼트 이상]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에 맞춰서 연기를 했어요. 악역이라는 생각이 없었거든요. 인물에 대해 초점을 맞추다 보니 그랬던 것 같아요. 나중에 시청자 반응을 보고 나서 악역이구나 싶었어요. 이후 대본에도 점점 악역의 이미지가 갖춰지고요(웃음). 중간중간 대사보다 ‘부들부들 떤다’, ‘소영 노려본다’가 더 많았어요. 중간쯤엔 사실 좀 놔버리고 싶더라고요. 제 사연을 드러내기보다 악역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러다가 후반부에 번뜩 정신을 차렸어요. 여기서 놓아버리면 민폐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자신의 악행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또 다른 악행을 저지르는 소영이었지만 결국 그도 안쓰러운 사연을 가진 아이에 불과했다. 어쩌면 그의 악행은 냉담한 아버지와 반 아이들에게 악다구니를 쓴 것일지 몰랐다.
“마지막 회에서 은비에게 용서받는 장면이 있어요. 쌓인 게 많다 보니 눈물이 터질 것 같은 거예요. 주변에서 ‘울지마 울지마’하고 감정을 추슬러줬는데, 은비가 가버리고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렸어요. 시원하더라고요. 컷을 한 이후에도 눈물이 주체가 안 됐어요.”
일부러 캐릭터와 거리를 두려고 했다. 주로 아픈 인물들을 연기해왔던 그는 배우와 캐릭터 사이에 간격을 두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늘 지나고 보면 “가까이 밀착해” 있었던 캐릭터들은 오래도록 조수향에게 흔적을 남겼다.
“마지막 회를 찍고 마음이 아주 아팠어요. 제가 억지로 소영이를 껴안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나라도 따듯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요. 사실 굉장히 상처도 결핍도 많은 아이였으니까요.”
유난히 김소현과 부딪치는 신이 많았던 조수향은 상대 배우인 그녀에 대해 “눈빛부터가 다른 배우”라며 신뢰와 애정을 드러냈다.
“은비와 은별을 두고 확연한 차이를 두고 연기했기 때문에 상대 배우로서 편했고 고마웠죠. 은별이와 붙는 신에서는 ‘은비 좀 데려와 난 은비가 좋아’하고 농담하기도 했어요. 가장 큰 연기 변화는 눈빛인데 은비가 그렁그렁한 느낌이라면 은별이는 진짜 센 느낌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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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유) 학교2015 문화산업전문회사,FNC 엔터테인먼트]
따돌림을 주도했던 강소영은 방송 후반 부 공태광(육성재), 한이안(남주혁)을 비롯해 같은 반 아이들 모두에게 외면당하게 된다. “모두가 적인 상황이 쓸쓸하지는 않았냐”고 묻자 그는 “많이 외로웠다”고 답했다.
“이안이 태광이, 은비도 그렇지만 같은 반 아이들이 전부 싸늘하게 절 보잖아요. 교탁 앞에서 떠들 때마다 그런 부정적인 시선들이 느껴저서 울컥했어요. 모두가 날 싫어하는구나. 시청자들도 날 싫어하는구나(웃음). 외로운 기분이었죠.”
그런 쓸쓸한 감정들은 오히려 강소영이라는 인물에게는 이득이었다. “서러움도 울분도 캐릭터에 잘 녹아들었기” 때문이었다. 작품에 몰입할수록 더 외로워지는 감정을 느꼈던 조수향에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시청자들의 악플”이었다.
“방송 후반부터는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는데요. 초반에는 정말 감당하기 힘들더라고요. 아무래도 제가 생소한 얼굴이기 때문에 역할 그대로 받아들이셨던 것 같아요. 늘 불쌍하고 안쓰러운 역할을 맡다 보니까 이런 악플이 낯설었던 것 같아요.”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평가가, 댓글이 낯선 신인 배우. 그에게 “악플과 반대로 정말 기분 좋았던 댓글은 무엇인지” 물었다.
“전 응원 댓글은 다 기억해요. 늘 욕만 먹다가 그런 이야기를 보면 ‘나를 아껴주는 사람도 있구나’하고 감동을 하거든요. 그거 보고 울기도 했어요. 가장 기억 남는 댓글은 ‘소영이가 왜 그랬는지 배우님의 연기를 보면서 알게 됐다’는 말이었어요. 길게 길게 좋은 글 써주시는 분들도 많아요. 그런 걸 보면서 끝까지 캐릭터를 놓지 않고 연기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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