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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 서막을 연 엘리자베스 1세가 해적 드레이크를 기용해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한 때는 영국 동인도회사가 설립되기 12년 전이다. 그로부터 14년 후인 1602년 네덜란드가 동인도회사를 세우고, 1604년에 프랑스 동인도회사가 출범했다. 영국이 동인도회사를 먼저 만들었으나, 첫 주식회사는 2년 늦게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다.
16세기 중후반 몇몇 네덜란드 상인그룹은 동아시아와 교역을 위해 선단을 구성해 항해를 시도했다. 1595년 출항한 무역회사 선단은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어도 동아시아와 교역 가능성을 입증했다. 강대국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위협과 간섭을 피해 장거리 항해와 교역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후 7년동안 50척으로 구성된 7개이상의 선단이 암스테르담 항구를 떠났고, 로테르담 등에서도 수많은 선박이 출항했다. 모든 선박이 무사히 귀항하지는 않았지만, 성공할 경우 비용을 제하고도 몇배가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 동인도회사는 기존 회사와 몇 가지 점에서 차이가 났다. 기존 회사의 투자자는 회사의 경영정책에 영향력이 없었다. 개인적인 관계로 돈을 빌려준 것이지 특정 비즈니스에 투자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인도회사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한 공모방식으로 자본금을 모았고 정관은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투자자는 몇몇 상인그룹이 아닌 주요 도시에 지점을 갖춘 비즈니스에 투자한 것이다.
또한 기존 회사는 통상 한번의 항해를 마치면 이익을 분배하고 해산했고, 존속기간도 3~4년에 불과했다. 그러나 동인도회사는 처음부터 21년의 존속기간을 전제로 설립돼 약 200년 동안 지속됐다. 최초 공모에 1143명이 응모했고, 자본금 규모는 130만 달러에 달했다.
정부로부터 승인받은 46개 조항의 정관에는 경쟁관계인 주요 지점간의 권한, 임원보수, 선박건조와 화물수수료를 규정하고 교역 상대국과의 교섭권 및 나포선박의 처리방법도 정하고 있다. 사업목적은 선박을 건조해 선단을 구성하고, 동아시아로 모험항해를 떠나 향료교역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업계획은 상당기간 마련되지 않았고, 투자에 대한 리스크는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당시 투자자 중에 설립 발기인 드릭 반 오스의 하녀도 있었는데, 몇 달의 공모기간 동안 고민하다가 청약 마지막 날 밤에 투자를 결정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가능성은 크지만, 성공이 불확실한 오늘 날의 벤쳐기업과 유사했다.
동인도회사가 상당한 금액의 자본금을 유치했지만 실제 납입은 3~4회에 걸쳐 이뤄졌다. 일부 청약자는 실제 납입을 하지 않고 권리만을 매도했는데 최초의 매도자는 얀 알러츠다. 1603년 3월 알러츠는 마리아 에그몬트와 바숨에게 청약권리를 매도했고, 가격은 투자원금보다 6.5% 높은 금액으로 정해졌다. 당시에는 정형화된 무기명 주식이 없었기 때문에 주식에 대한 양도는 거래소 역할을 하던 동인도하우스 임원의 승인과 기록원을 통해 이뤄졌다. 최초의 주식이라고 알려진 증서는 사실 법적 효력이 없는 영수증에 불과했다.
현대의 주식회사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고, 장내외 주식거래를 통해 투자자의 지분이 회수된다. 특히 벤쳐회사에 대한 투자는 상장과 더불어 공정한 가격이 형성된 후 비교적 원활하게 회수되는데, 최초 주식회사의 경우 청약금액이 납입되기도 전에 권리가 거래된 것과 비교된다. 사업목적에 대한 투명성과 평가가 적절하게 이뤄지고 공정한 가격형성과 시장감시가 뒷받침된다면, 신생 벤쳐기업 주식을 거래하는 시장을 마련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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