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 큰산 하나로 잇고 있는 1,625km, 실제 걷는 산행거리 2,000km
언제부터인지 그 이름 만으로도 매혹 당하기에 충분 했던 백두대간.
그 시작은 약 10년전 금연 하면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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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홍성군 광천읍 김영환 제공]
어떤 큰 잘못으로 인해서 20년이 넘게 피워오던 담배를 내아내와 금연을 약속하게 되었다.
정말 힘들었다.
금단현상이 너무도 심해때로는 폭력적으로 또 때로는 온 몸이 너무 가려워서 벅 벅 글다보면 열 손가락 손톱에 피가 흥건히 고이는 적도 있었다.
더욱 힘들었던건 식탐.
시도 때도 없이 배가 고픈데 항상 간식이 옆에 있어야되고 심지어 어린 꼬마들이 과자를 물고다니면 돈주고 얻어 먹은적도 있었다.
그렇게 1년 정도가 지난 어느날.
난 그야말로 인간 돼지란 말이 무색하지 않을만큼 뚱뚱해져 있었다.
키 164에 몸무게 85kg 허리둘레는 36인지가 안 맞아서 숨 쉬기가 여려운 지경이 되었다.
거기에 고혈압까지, 심지어 발톱을 내 스스로 깎기가 어려워서 와이프에게 내 놓았다가 6박7일을 싸우게 되었다.
그때는 많이 서운 했다.
아내가 되어서 남편 발톱도 못 깎아 주나 싶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발톱을 깎아주냐면서 몸 관리좀 하라는 와이프의 말에 충격을 받게 되었다.
그 뒤로 나는 홍성 광천 어르신들이 다니는 동네 뒷산인 꿀꿀이봉을 다니기 시작했다.
왕복 3km정도 되는 거리가 처음에는 왜이리 멀고도 험하게 느껴지던지, 열 걸음가서 쉬고 또 몇 걸음 못가서 쉬고, 하지만 주저 앉지는 않았다.
그렇게 일년여를 거의 매일 다니다보니 꿀꿀이봉 정상에 서면 보이는 광천 오서산을 보게 되었다.
오서산으로 한번 두번 발길을 돌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해발 791m의 오서산도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몸도 많이 가벼워졌고, 그렇게 다시 2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어느날.
우리나라 명산을 찾아다니는 산객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약 6년여간 염치도 없이 지역에 있는 많은 산악회를 통해서 전국 명산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이젠 민족의 등줄기, 한반도의 대 동맥, 백두대간 종주가 불혹의 나이 절벽에 서있는 나에게는 내 인생의 큰 숙제가 되었다.
홍성 어울림 산악회에서 백두대간 종주팀을 모집한다는 신문기사를 보았을때 정말 나를 위해서 만들어지는 종주팀인냥 설레임에 기뻤다.
그 설레임은 곧 바로 첫 구간인 진부령 부터 미시령 까지의 산행에서 느꼈다.
지금까지 해오던 명산 산행과는 거리가 많이 느껴졌고, 한구간 또 한구간 마칠때마다 느끼는 성취감과 희열 그리고 다음 구간에 대한 또다른 설레임과 기다림.
어쩌면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시간들과 많이 닮은것 같은 백두대간.
수도없이 많은 봉우리들을 넘고 또 넘고,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속을 헤쳐 나아가야하고 때로는 가야할 길을 잃고 마냥 헤매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또한 백두대간 산행에서 겪어야되는 필연적인 산행이 아닐듯 싶었다.
아직 갈길이 머나먼 대간 산행 이지만 항상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홍성 어울림 백두대간 종주대 전우들과 안전산행을 최우선으로
오늘도 진정한 산꾼으로의 한발 다가서는 행복한 꿈을 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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