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의 차 한 잔] 승려들의 가사 장삼은 찢기면 안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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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3-25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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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에 피신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체포영장 시간이 다가온 지난해 12월 9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관음전 앞에서 조계사 스님들을 비롯한 신도들이 합장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자타공인의 우리나라 불교 대표브랜드인 대한불교조계종이 과거 봉은사 토지였던 강남구 삼성동 구 한전부지를 되찾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조계종은 지난 1970년 박정희 정권이 정치자금 마련을 위해 상공부 이전 부지가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워 조계종단을 기망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당시 봉은사 주지와 법정스님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계종 총무원 주도로 구 한전부지를 헐값에 매각하게 했다는 것이다. 강압적인 분위기로 봉은사는 이의제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법적 주체인 봉은사가 동의하지 않은 매매계약은 무효라는 주장이다. 

환수위원회는 한전부지 개발 중단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 10일과 14일 서울시청을 방문해 박원순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하지만 면담은 이뤄지지 않았고 지난 23일 봉선사 등 전국의 신도들을 동원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한전부지 환수기원법회를 열었다.

환수위 공동위원장 지현스님은 봉행사를 통해 “봉은사는 과거 군사정권의 정치자금 확보를 위한 술책에 말려들어 선대들이 물려준 소중한 전통사찰 경내지를 빼앗기고 말았다”면서 “1971년 총선과 1972년 대선을 앞두고 남서울개발계획에 필요한 봉은사 토지를 확보하고자 치밀하고 강압적으로 불교계를 강제했다”고 주장했다.

조계종단의 주장대로라면 과거 봉은사 부지 강탈의 책임은 당시 대한민국 정부에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서울시장이 면담을 수용하지 않자 조계종 환수위원회 명의로 선거가 20일도 남지않은 상태에서 “더 민주 총선필패” “박원순 대권불발” 등의 피켓과 “재벌과 더불어? 서민과 더불어? 더민주-한전부지 개발허가 즉시 중단하라!"라는 현수막이 내걸리고, 동일한 구호가 외쳐졌다. 한전부지 환수위원회는 이날 법회 후 한전부지를 사들인 현대자동차그룹 본사로 찾아가 집회를 가졌다.

이에 대해 참여불교재가연대는 “법적인 무효를 주장하면서도 소송을 통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하고, 선거국면을 이용하여 공공기관을 곤란하게 만들어 인허가를 지연시킴으로써, 적법절차에 따라 건축허가를 받을 권리가 있는 현대자동차로부터 합의금을 받자는 상식 밖의 행동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기반성 없이 모든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는 이른바 ‘남탓’은 ‘청정비구’라는 수행자로 구성된 종교집단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못된다. 김영국 연경불교정책연구소 소장은 “현 조계종 집행부는 1970년에 봉은사 땅을 팔아먹은 조계종 집행부와는 법통이 다르기 때문에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토지를 강탈당했다고 한전부지 환수를 주장하고 있는 것인가?”라고 본인의 SNS를 통해 의문을 제기했다.

조계종단은 겸허히 자신의 과거 잘못을 반성한 뒤 성직자로서의 품위를 갖추고 부처님 법에 맞는 목표와 방법을 정당하게 설정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난입과정에서 시 관계자가 물리력을 행사해 스님과 종무원들이 부상을 입었다. 삼보의 상징인 가사와 장삼도 심하게 훼손됐다고 한다. 아무쪼록 쾌차를 빈다.

언젠가부터 종교권력이 민주사회의 시민을 대변하는 정치권력 위에서 횡행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최근 고위직 정부인사와 당대표들이 조계종 총무원장을 만나러 조계사로 찾아가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이유없이 서울시장이 조계종 승려들과의 면담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 수행자라면 그 이유를 반드시 스스로에게 찾아야 한다. 한 신도는 "(면담이)왜 거절되었는지 그 이유를 살피지 않은 채 1만 명을 동원, 청사로 들어가고자 시도하는 것은 ‘난입’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과거 조계종은 '조계사는 성소'라며 정당한 공권력 투입조차도 극단적으로 거부한 적이 있다. 그런 조계종이 천만 서울 시민의 공공 장소인 서울시청에서 단 몇분이라도 시장이 만나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면서 ‘난입’으로 오해받을 일을 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정당화할 수 없다. 이 광경을 부처님이 보셨다면 뭐라고 하셨을까?

우리 불교에서 가사와 장삼은 깨달음을 얻은 스승이 제자에게 법을 전하는 수단이다. 설사 깨달음은 얻지 못했더라도 부처님과 같은 복장을 했다면 반드시 부처님 법에 맞게, 부처님의 제자답게 언행해야 한다. 적어도 스스로 삼보라고 말하고 있다면 더더욱 그래야 할 것이다. 

한전부지를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우리 불교의 수천년 존엄은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마지막으로 달라이라마가 탐독하는 '입보리행론' 인욕편을 인용한다.

“불상, 불탑, 정법을 비방하고 훼손하는 사람이 있어도 부처님께는 전혀 해가 되지 않으니 굳이 미워하거나 화낼 필요가 없습니다. 스승, 가족과 친척, 친구나 친지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조차도 역시 이전(전생)의 악업으로 비롯된 것임을 알아 화내지 말아야 합니다…예를 들어, 집을 태우던 불이 다른 집으로 번질 수 있으니, 지푸라기와 같이 불길을 옮길 수 있는 것들을 먼저 치우는 것이 옳습니다. 마찬가지로 재물과 명예와 같은 그 무언가에 집착하여 분노의 불길이 번질 때에는 복덕의 보배인 마음까지 불에 타지 않도록 집착의 근원을 즉시 없애야 합니다.”

dogyeom.ha@gmail.com

※ 이 칼럼은 사부대중이 맑고 밝은 구도의 길을 가기 위한 자성과 쇄신이라는 공익적 목적으로 일부 전문가와 신도들의 우려를 전하는 형식으로 작성됐다. 이는 일방의 의견일 뿐 다른 해석과 반론도 충분히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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