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나라는 역시 중국이다. 미·중 양국 사이에는 체제 논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트럼프를 ‘빅 마우스’ ‘미치광이’ 등으로 비하하면서 그의 출현을 미국 민주주의의 실패 사례로 꼽는다. 관영 신화통신은 트럼프 현상을 두고 미국사회가 당파 간 정쟁에 염증을 드러낸 것이라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중국은 미국 대통령 선거전 승리는 뛰어난 선거자금 모금 능력과 유권자를 혹하게 만드는 대중 연설의 결과물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이에 비해 중국에서는 차세대 지도자가 공산당 내 체계적인 양성 과정을 거쳐 배출된다는 점을 내세운다.
미국 언론은 이에 대해 공산당 일당지배 체제의 모순과 표현의 자유마저 없는 중국의 현실을 지적한다. 워싱턴포스트는 마오쩌둥(毛澤東)이 1950년대 말 주도한 대약진운동 당시 수천만명이 굶어죽은 걸 예로 들기도 했다. 공산당이 잘못된 방향으로 갈 경우 그것을 바로 잡을 기능이 없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저명한 중국 전문가인 데이비드 샴보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신간 ‘중국의 미래’에서 “중국이 실질적인 정치적 자유화를 이루지 못하면 경제 개혁도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며 “그 경우 경제가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의 대중 비난에는 단호한 입장을 보인다. 중국의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미국 제조업에서 대량 실업이 생겼다거나 중국이 환율 조작을 통해 미국을 업신여겼다고 하는 발언에 대한 것이다. 그들은 “중국의 일자리는 국제적인 분업 과정에서 중국이 우위를 가진 분야에서 스스로 쟁취한 것이지 미국이 베풀어 준 게 아니다”고 반박한다.
사실 트럼프의 대선 전략은 정교한 기획의 산물이다. 단순히 정쟁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를 파고 든 게 아니라 경제적 궁핍에 빠진 백인 저소득층, 특히 남부 백인들을 겨냥한 것이다. 그는 미국의 경제력이 과거보다 못한 원인을 비백인 이민자와 중국 등 다른 나라 탓으로 돌리면서 보호무역주의와 인종차별주의를 내세운다. 다른 정치인들이 증오의 확대재생산을 초래할 것이라고 비난하든 말든, 선거를 통해 무솔리니나 히틀러가 뽑히는 꼴이라도 해도 상관 않는다.
이에 따라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앞세운다. 지난 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였다. 언제까지고 미국이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할 수는 없다면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쓸모없다는 말도 했다. "미국은 20~30년 전처럼 강하지 않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친다. 슬로건 본래 의미와는 차이가 있지만 세계 무대에서 한 발 뺀 뒤 미국 경제부터 살리겠다는 뜻이다. 먼로주의의 부활인 셈이다.
그는 마침내 한국과 일본이 방위비 분담금을 크게 늘리지 않으면 양국으로부터 미군을 철수시킬 것이라면서 한·일의 핵무장을 용인할 수 있다는 발언까지 내놨다. 이러한 방향은 전후 질서 유지를 위한 미국의 전략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즉 미군의 해외주둔은 미국의 필요에 따른 측면이 있는 데도 이를 외면한 것이다.
중국과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선 "미국이 대중 무역에 있어서 우위에 있는 힘을 이용해 중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국간 무역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것처럼 들린다. 유럽 국가들은 트럼프가 주장하는 보호무역주의는 세계 경제에 커다란 해악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트럼프를 입국 금지 대상에 포함시킬 정도다.
트럼프의 정제되지 않은 주장들은 미국 국내에서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그의 말이 먹혀들고 있는 것은 미국 사회가 위기를 느끼면서 변하고 있다는 신호인 셈이다. 미 공화당도 내홍과 진통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우리에겐 국제정세의 큰 흐름을 보면서 미래에 대비하는 자세가 더욱 절실해졌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느냐 마느냐와는 상관없이. wkchong@
(아주경제 중문판 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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