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문은주 기자 = 네덜란드에서 치러진 유럽연합(EU)-우크라이나 간 경제 협력에 대한 찬반 투표에서 반대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집계됐다. EU 통합 정책에 대해 회원국이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어서 향후 EU 내 정책 결정 과정에 비상이 걸리는 등 EU 공동체의 분열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 10명 중 6명 반대..."대(對) 우크라 반감 영향"
영국 일간 가디언, AFP통신 등 외신이 6일(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개표 결과 반대표가 60%를 넘어서면서 찬성(38%)을 앞섰다고 보도했다. 개정된 네덜란드 국민투표법에 따르면 투표율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투표율 30%를 넘겨야 한다. 투표율은 32.2%를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네덜란드의 국민투표 결과는 법적인 구속력이 없지만, 반대 여론이 압도적인 만큼 정부가 비준을 강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는 이미 "반대표가 다수인 점을 고려해 유효 투표율(30%)이 충족된다면 협정을 비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6개 주요정당 대표들도 EU-우크라이나 간 협정을 비준할 수 없다는 데 동의하면서 사실상 비준이 어렵다는 예상이 나온다.
이번 결과는 네덜란드인들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반감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BBC가 보도했다. 지난 2014년 7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떠나 우크라이나로 향하던 말레이시아 항공 여객기가 격추되는 사건이 발생해 승객 283명과 승무원 등 298명이 사망했다. 네덜란드는 자국민 193명이 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우크라이나와 대립 상태인 러시아와의 관계도 주목된다. 네덜란드 국적의 에너지기업 로열더치셸은 시베리아 유전 등 러시아에서 보유한 자산만 70억 달러(약 8조원)가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러시아와 관계가 틀어지면 자국 기업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러시아에 대해 EU 등 서방국가들이 경제제재 조치를 내렸을 때 네덜란드가 입장 정리를 못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 강제적 EU 운영 방식에 불만...영국 브렉시트 투표도 주목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와 긴밀한 경제협력 관계를 추진하던 EU 정책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EU는 지난 2014년 6월부터 우크라이나와 자유무역협정(FTA)을 포함한 포괄적인 협력협정을 체결하고, 18억 유로의 자금을 지원하면서 우크라이나를 유럽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공을 들여 왔다. 그동안에는 28개 회원국 중 네덜란드만 유일하게 대(對) 우크라 협정을 비준하지 않아 교착 상태에 빠졌었다.
EU 운영 방식의 문제점이 표면화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993년 창설된 이후 EU는 '유럽 내 단일 국가 건설'이라는 슬로건 아래 공동체로 운영됐다. 그러나 역내 크고 작은 이슈가 생길 때마다 EU집행위원회(EC) 등 중앙에서 결정된 사항을 강제적으로 이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회원국의 권한은 박탈하고 있다는 불만이 새나왔다. EU의 틀과 운영 방식을 새롭게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이번 투표 결과는 EU 차원의 통합 정책에 회원국이 반기를 든 사례로서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당장 오는 6월 23일 영국에서 치러지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찬반 국민투표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설사 영향을 주지 않더라도 난민 문제와 테러 대응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재한 EU 입장에서는 상당한 타격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창설 이후 20여 년 만에 최대 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