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의(張忠義) 인민화보 월간중국 편집장 =중국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요즘 한국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중한 외무장관 회담에서 왕이 부장은 윤병세 장관에게 직설적으로 “한국의 최근 행위는 양국 상호 신뢰의 기초를 훼손했다”며 사드의 한국 배치 반대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윤 장관의 발언을 들으면서 손사래를 치거나 턱을 괴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한국 언론은 왕이 부장의 행동에 대해‘외교적 결례’,‘무례’라고 비판하고 나섰고 일부 언론은‘중국의 오만’‘한국에 대한 모욕’이라고 흥분하기도 했다.
한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윤 장관은 왕이 부장에게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면서 ‘추신지불 전초제근(抽薪止沸 剪草除根)’등 고사성어까지 인용하여 사드배치를 유발한 근본 원인은 북의 핵 미사일 위협에 있음을 강조했다고 한다. ‘추신지불 전초제근’이란‘물을 식히려면 장작불을 빼야하고, 풀을 완전히 제거하려면 뿌리를 뽑아내야 한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바로 이 고사성어가 왕이 부장의 ‘성가셔하는’ 행동을 촉발한 원인이 아닐까 싶다.
알다시피 한국어에는 중국에서 차용한 고사성어가 많다. 차용하는 과정에 약간의 변형이나 의미의 차이가 생겨났다. ‘전초제근’은 바로 그 중 하나다. ‘전초제근’은 고서적에 나와있지만 현재 거의 쓰이지 않는다. 대신 ‘참초제근(斬草除根•풀도 베고 뿌리도 통채로 뽑아야 한다)’라는 성어를 더많이 쓴다.
윤 장관은 “풀을 베는 것보다는 뿌리를 뽑는 게 낫다”는 의미를 전달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인들은‘전초제근’의 의미를‘참초제근’으로 받아들인다. “풀은 물론이고 뿌리까지도 통채로 뽑아내 박멸해야 한다”는 말에 중국인들은 잔혹하고 살벌한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중국의 사극(史劇)을 보면 일가족을 모두 몰살하는 ‘멸문(滅門)’이 자주 나온다. 이런 ‘멸문’을 중국인들은 참초제근이라 일컫는다. 국제무대에서 미국이 이라크의 후세인, 리비아의 카다피를 제거한 것도 참초제근이라 부른다.
본의가 아니겠지만 공교롭게도 윤 장관의 고사성어는 그 동안 한미 극단 보수세력이 북한(조선-편집자 주)에 대해 보여준 태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특히 미국9.11테러 이후 이들 세력은 북한을 ‘악의 축’’불량 국가’로 규정하고 핵과 미사일 개발뿐만 아니라 ‘독재’’인권’등을 들고 나와 북한을 궁지에 몰아 넣었다. 북미관계가 급랭되면서 6자회담도 중단되었고 결국 북핵문제에 관한 여러 가지 협의성과까지 물거품이 되었다. 북한 권력 교체기에 미국은 소위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정책을 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를 미국의‘전략적 기다림(Strategic Waiting)’이라고 보고 있다. 즉 북한의 내부 ‘급변사태’ 내지 정권의 붕괴를 기다리는 것이다. 한미 양국이 이를 대비하는 작전계획까지 세운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반드시 이 고사성어 때문에 왕이 부장이 ‘굳은 표정’과 ‘성가셔하는’모습을 보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미의 사드배치 발표 이후 왕이 부장은 ‘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반도 자체의 방어 수요를 훨씬 초월한 것이며, 어떤 변명도 무기력 한 것이다’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그만큼 중국의 입장은 명확하다. 이번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윤 장관이 고사성어까지 동원하여 사드 배치의 필요성과 그 근본적인 원인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중국 설득에 나선 것은 왕이 부장에게는 결국‘무기력한 변명’에 불과한 것이다.
중국 여론 뿐만 아니라 한국의 일부 인사와 여론도 사드 한국 배치의 군사적 효용성과 필요성에 대해 의심을 나타내고 있다. 나아가 한국과 중러 간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동복아 지역 힘의 균형을 깨고 군비경쟁과 새로운 긴장을 조성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많은 이들은 한반도의 분열 고착화와 신냉전이 유발될 가능성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윤 장관은 “봉산개도, 우수탑교(逢山開道,遇水搭橋. 산을 만나면 길을 트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다)”라는 고사성어도 인용해 한중관계가 어려울 때 같이 방법을 찾자고 강조했다.
듣기엔 사드를 배치할 성주의 산 높이가 400m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드의 산을 뛰어넘어 한중 관계의 탄탄대로를 트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 본 기사와 사진은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외문국 인민화보사가 제공하였습니다. 본 기사는 아주경제 논조와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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