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윈(馬雲), 알리바바 총재
"밤에, 전라선을 타보지 않은 자하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안도현 '인생'
"한 사흘, 잉쭤(硬座)를 타보지 않은 자하고는 중국을 논하지 말라."
-강효백 '중국'
2013년 개봉된 영화 '설국열차' 안은 평등하지 않았다.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바글대는 빈민굴 같은 맨 뒤쪽의 꼬리칸, 그리고 선택된 사람들이 술과 마약까지 즐기며 호화로운 객실을 뒹굴고 있는 앞쪽칸, 그리고 열차의 맨앞 칸, 심장인 엔진을 장악하고 있는 절대권력자.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필자의 뇌 실핏줄에는 '설국열차'와 별도로 두량의 실존 열차가 달리고 있었다. “실제 중국열차와 현재 중국사회”
중국 장기체류 시절, 필자는 장거리 여행 중 두 번 ‘서거’할 뻔 했다. 한번은 상하이에서 티베트로 비행기로 날아가다가 해발 3000m 라싸 공항에 내리는 순간 ‘급성 고산병’에 걸려 잠시 혼수상태에 빠졌다. 또 한 번은 베이징발 우루무치(1*)행 5박 6일 일정의 5등 열차 콰이커(快客, 쾌속열차 快速列车, 약호 K) 5등석 '잉쭤(硬座 딱딱한 좌석)'에 앉은 채로 ‘객사’할 뻔 했다.
필자는 기차여행을 좋아한다. 특히 장거리 여행에는 '점'에서 '점'으로의 비행기보다 '선'에서 '선'으로의 기차를 택한다. 필자가 라싸 공항에서 급서할 뻔 했던 까닭은 그때만 해도 티베트로 가는 열차가 없어서 할 수 없이 비행기를 탓기 때문이다.
기차를 타고 떠나는 여행은 시·청·후·미·촉각으로 이뤄진 인간의 오감 중에 특히 청각과 촉각을 만족시켜 좋다. 때문에 신식열차보다 구식열차를 좋아한다. 칙칙폭폭 사라져버린 증기기관차 소리는 아니더라도 덜컹덜컹 바퀴가 레일연결부를 지나갈 때 발밑을 간지럽히며 은은히 느껴지는 2박자 소리가 좋다. 덜컹덜컹 기차소리는 잠결에 창문을 두드리는 새벽의 빗소리와 흡사해 더욱 좋다. 때문에 시간여유만 있으면 급행열차보다 완행열차를 택한다. 기차를 타면 두 발이 두 귀가 되는 쾌감을 조금이라도 오래 누리기 위해서.
2000년 5월 필자는 노동절 연휴기간을 활용해 실크로드 기행을 떠나기로 했다. 누가 말했던가, 인간에게 행복감을 주는 최고의 탈 것 기차를 타고 비단길을 가는 행운아, 낙타 대신 기차라는 문명의 이기를 누릴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난 축복에 감사하면서 베이징 서(西)역에서 신장위구르자치구 중심도시 우루무치 행 기차표를 예매했다.
떠나려는 대륙의 인파 장사진 속에서 필자는 한 기차에 그렇게 많은 등급의 차등객실(**아래 표 참고, 2010년대 이전에는 4등급, 이후는 5~6등급)과 또 객실에 따라 그렇게 격차가 큰 기차표의 차등가격에 잠시 당황했다.
“‘평등’을 핵심이념으로 추구하는 사회주의는 간데없고 ‘차등’의 봉건주의만 의구하구나.”
“아, 그래서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 인민 중국인들도 “태어나면서부터 서로 관련은 있지만 평등하지는 않다(生而關聯 非生而平等)” 라는 말을 밥 먹듯이 하고 있구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5등 열차 콰이커, 5등 칸 잉쭤 표를 샀다. 중국의 ‘서민체험’을 하고 싶었고 기차표 가격이 1등실 '란워(軟卧 푹신한 침대)'보다 8분의 1 가량 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것 보다는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두 발이 두 귀가 되는 청각과 촉각의 이중쾌감을 보다 오래 보다 강렬하게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입석표도 있었지만 5박 6일을 입석으로 갈 염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입석표와 잉쭤표의 가격이 같았다. 꼴등 칸 좌석이지만 입석보다는 나은 좌석이겠거니 낙관하며 기차를 탔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잉쭤는 말이 좌석이지 오히려 입석보다 불편했다. 잉쭤, 이름 그대로 강철로 만들었는지 차갑고 딱딱한 90도 각도의 등받이(이런 직각의 등받이 의자형태 구조물은 아마 세계 유일무이) 좌석은 입석승객도 얼마든지 끼워 앉을 수 있는 지정좌석이 아닌 자유석이었다. 원래 2인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나 실제로는 3~4명이 앉았다.
필자의 옆자리에는 청국장보다 수십 배보다 강한 내음이 진동하는 ‘썩힌 두부’, 초우도우푸(臭豆腐)(2*)를 상식하는지 극강의 오묘한 체취를 풍기는 아주머니, 또 그 옆에는 ‘기름때의 피부화’를 이룬 상체를 자랑하듯 웃통을 벗은 채로 기적소리 못지않게 요란한 코골이 소음을 발산하며 자는 중년사내, 이 둘과는 5박 6일 종착역까지 함께 자리했다. 내 맞은편 좌석의 세 여인들은 사탕수수를 우적우적 씹고난 찌꺼기를 누가 많이 뱉어내는가 내기라도 하듯 열차바닥에 마구마구 뱉어내었다.
당초 품었던 덜컹덜컹 발이 귀가 되는 청각과 촉각의 이중쾌감은 엄청난 망상이었다. 반면에 후각의 변화추이는 상전벽해 수준이었다. 첫날에는 ‘삭힌 홍어+ 청국장+ 푸세식 해우소=잉쭤의 악취’ 등식이었다가 이틀 후부터는 차츰 무아지경해지다가 마지막 엿새째는 ‘나 + 너 + 우리 모두의 체취 =잉쭤의 향기’ 차원으로 아름답게 우화(羽化)될 수도 있다는 진실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하지만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원천은 진주 촉석루 절벽처럼 90도 직각의 등받이 잉쭤였다. 중세 암흑시대 마녀사냥때 고문기구 ‘철의자’가 이러했을까, 5박 6일동안 잉쭤가 약골의 외인에게 가하는 고통의 촉각은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의 무거움’이었다.
요컨대 영화 ‘설국열차’는 다큐 같은 픽션이고 실존 ‘중국열차’는 픽션같은 다큐이다.
‘설국열차’와 ‘중국사회’를 형상화한 개념으로서의 ’중국열차’는 동의어는 아니나 유사어라 할 수 있다. 설국열차와 중국열차는 두 가지가 크게 같고(大同) 두 가지는 조금 다르다(小異).
대동 두 가지, 첫째, 양자 모두 계층에 따라 극명하게 차별되어진 삶을 살아가는데 앞 칸으로 나아가려하는 부류와 현재에 만족하며 자리를 지키려는 부류가 있다는 것.
둘째, 양자 모두 ‘엔진’이 있는 기관차(중국열차의 엔진은 중국공산당)만 동력을 갖고 있으며 오직 정해진 선로를 따라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소이 두 가지, 첫째, 둘 다 꼬리칸의 사람들은 억압에 의해서 질서가 유지되지만, 앞칸 사람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의 주요 성분이 다르다는 것. 설국열차의 그것은 위화감이나 분노인 반면에, 중국열차의 그것은 선망감과 부러움이다.
둘째, 설국열차는 간혹 시대의 이단아가 탑승하여 열차의 앞이 아닌 옆을 가리키며 “이런 문이 아니라, 이쪽 문을 여는 거야” 외치기도 하며 실제로 옆문이 파괴된 적도 있다. 하지만 중국열차는 열차 안의 현세와 실리만 있을 뿐, 열차 밖의 이상과 피안 따위는 없다. 중국열차에는 물욕추구의 앞 칸으로 향하는 문만 있으며 바깥으로 향하는 옆문도, 아니 바깥이란 개념 자체가 없다. 완벽한 세속주의 모노레일을 달리는 반만년 폐쇄 시공간안에서의 권력자의 대체와 순환만 있을 뿐이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과 일본 일각에서는 중국의 경제가 발전하면 중국인들의 정치 참여 욕구가 커져 조만간 중국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제2의 톈안먼 사태'가 터질 것이라고 기대와 저주 섞인 예언을 수십년째 하고 있다.
이는 중국과 중국인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다. 반만년 상인종 중국인은 부자가 되더라도 열차 밖 서방의 ‘민주’를 원하지 않는다. 열차 앞칸 ‘더 큰 부자’가 되길 원할 뿐이다.
“한국인은 배고픔은 참으나 배 아픔은 참지 못한다. 중국인은 배 고픔은 참지 못하나 배 아픔은 잘 참는다.”
한·중 양국의 국민성을 일도양단하여 재단해서도 안 되고 재단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성은 누구도 쉽사리 부정 못하리라.
중국인들은 대개 부자들을 배 아파하지 않는다. 부자들이 남보다 몇 십 배의 노력으로 돈을 벌었으니 그만큼 쓰는 것을 욕하지 않는다. 다만 불법·탈법으로 돈을 벌고 주제넘게 방탕하게 쓰거나, 잘난 척·있는 척·아는 척, 높은 사람과 친한 척하는 부자들을 비판한다.
"우리나라 전래동화 '흥부와 놀부'와 비슷한 중국의 전래동화가 있으면 알려주세요, 후사하겠습니다."
이는 필자가 오래전 개인 블로그에 올려놓은 광고문이다. 여태껏 답이 없다. 30년 중국학도의 필자는 '흥부와 놀부'처럼 '빈자=착한사람, 부자=나쁜 놈‘이라는 권선징악적 대립구조를 담은 중국의 동화나 설화는 물론, 그 비슷한 것조차 듣도 보도 못했다.
2016년 6월 28일(길일) 중국 광둥성 선전시 지하철에 요금이 일반석 3배인 비즈니즈석이 등장했다. 선전시 지하철 11호선의 객차 8량중 2량이 비즈니스 전용이다.
이런 뉴스를 접한 순간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러고도 남을 중국이다. 내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한 20년전부터 알았다. 이 세상 어느 나라 어느 도시 지하철 객차에 비즈니즈 석이 있는 지하철이 있던가!
그런데 기사의 말미, 비즈니스 석 지하철이 양극화를 부추기는 우려를 하였다는 ‘현지 익명의 시민’은 기자가 창조한 ‘유령인간’은 아닐까? 이는 ‘부익부 빈익빈’의 불만이 팽배한 중국이라는 선입견에 터 잡고 ‘계급투쟁적 요소’ 조미료를 듬뿍 뿌린 폄하성 논조에 길들어진 자본주의세계 독자들의 미각에 영합하려는 ‘소설’이 아닐까?
끝으로 영화 '타짜'의 명대사 “내 손모가지를 걸고서” 는 아니더라도 “내 새끼손가락 손톱을 걸고서” 장담한다. “두고 보라, 앞으로 20년 내 중국도시 지하에는 차표가격이 3등급 이상으로 구분된 ‘차등열차’들이 횡행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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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신장위구르 자치주의 중심도시, 지구상에서 바다와 가장 멀리 떨어진 도시인데도 시내에는 바다생선회집이 즐비해서 깜짝 놀람.
(2)*두부를 볏짚으로 덮어 썩힌 발효두부로 우리나라 청국장보다 수백배 강한 냄새가 나나 한번 맛 들리면 은근히 중독되는 별미중의 별미, 필자도 초우도우푸 마니아
[참고서적]
강효백, 『중국의 슈퍼리치』,한길사, 2016.
[참고자료]
◈ 중국열차등급 객실등급
현재 중국의 기차등급은 G, D, Z, T, K, M 등 5~6개 등급이 있다. G는 중국고속철(高速动车组)로 고속철 전용철도로 운행하며 평균시속은 250~350㎞이다. D는 준고속열차(动车组)로 일반철도로 운행, 고속열차와 버금가는 평균시속200~250㎞이다. Z는 백색의 직통특급열차(直达特快)로 최대시속 160㎞, T는 청색의 특급열차(特快列车)로 최대시속140㎞, K는 홍색의 보통급행(快速列车)최대시속 120㎞, M은 녹색의 완행열차(慢車)로 객차에 에어컨이 거의 없다.
다.
직통특급 Z를 기준으로 살피면 고급롼워는 2인 침대칸으로 고급소파, TV, 화려한 조명등, 실내 전용화장실까지 갖춘 ‘움직이는 5성급 호텔룸’ 이다. 주로 1%내 중국부자나 신혼부부, 또는 연인들이 애용한다.
롼워는 한면에 각각 상하 2인의 푹신한 베드를 구비한 4인 침대칸이다. 고급란워보다 못하지만 움직이는 3성급 호텔룸이라 할 만큼 쾌적하다. 주로 10%내 중국 중상류층이 애용해서 부가가치가 쏠쏠한 인맥을 넓히기 좋은 칸이다. 필자의 체험도 그렇다.
3등칸 잉워는 한쪽에 각각 상중하 3인의 딱딱한 베드를 구비한 6인 침대칸이다. 맨 위 3층은 가격은 제일 싸지만 약간 위태롭다. 잠버릇이 나쁜 사람은 떨어져 크게 다칠 수 있는 높이인데도 실제로 떨어진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4등칸 롼줘는 옛날 우리나라 통일호 일반실 수준의 푹신한 좌석을 구비한 칸이다. 지금 중국의 Z,T,K급 같은 장시간 운행의 기차에는 보기 드물다. G와 D급 열차의 1등석이 롼줘 수준이다.
5등칸 잉쭤는 위에서 자세히 말했기에 생략한다. G와 D급 열차의 2등석 수준으로 윗 칸으로의 상승을 꿈꾸는 대다수 중국서민층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칸이다.
2003년 국경절 연휴를 이용해, 필자는 아이와 함께 이 5등급 칸을 골고루 타보았다. 지옥에서 천당까지 중국열차체험여행에 돌아 온 후 나는 아이에게 가끔씩 “너 공부안하고 놀기만 하면 커서 잉쭤타고, 열심히 공부하면 고급롼워를 타게 된다.” 는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속물근성 돋는, 유치찬란한 허튼 소리를 했다. 하지만 실제 효과면에서는 약발이 꽤 강한 ‘공동체험에서 우러나오는 훈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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