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교의 세상보기] 블랙홀 속으로 들어가버린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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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10-27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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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교 전문위원

나라가 가라앉고 있는 느낌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 외교 등 제대로 굴러가는 게 있는가. 무엇보다 어둠의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청년들이 안타깝다. 국정을 책임진 사람들은 그들에게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는 할까. 한창 푸른 꿈을 키워야 할 청년들이 취업난에 좌절하다 연애마저 포기하다니. 결혼과 출산도 남의 일로 치부할 수밖에 없는 그들 앞에서 할 말을 잃는다. 

이러니 가임 연령은 갈수록 높아지고 출산률은 바닥을 긴다. 인구 감소가 머지않아 현실이 될 처지에 절망하고, 지구상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에 전율한다. 산아제한에서 출산장려로 돌아섰어야 할 1980년대 후반에 세금 축내면서 자리만 지켰던 당시 보건사회부 관계자들은 현재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참 궁금하다. 지금이라고 다르지도 않다. 정부 차원의 저출산‧고령화 대책이 실효를 거두고 있다는 소식은 접하지 못했다. 관련 예산이 엉뚱한 곳으로 새고 있다는 서글픈 얘기만 들린다.

지금 당장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장래의 나라 모습이다. 청년 세대의 절망은 어두운 국가의 미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취업 못해 꺾이고 계층론에 풀 죽은 그들을 두고서야 다른 모든 정책이 허망하다. 그들의 체념은 인구 절벽 보다, 국가경쟁력 추락 보다 무섭다. 앞으로 나라를 끌고 갈 그들 아닌가.

이웃 중국과 일본을 보자. 우리 정치가 혼돈에 빠진 사이 그들은 강력한 리더십을 통해 새로운 동북아, 나아가 세계 질서 구축에 대비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그 동안 성과를 바탕으로 국정 장악력을 더욱 공고화할 태세다. 27일 폐막하는 18기 6중전회(18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에서 그 밑그림이 나오게 된다.

6중 전회에서는 집단지도체제를 규정한 '당내 정치생활 준칙' 개정이 예고돼 있어 이러한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내년 가을 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차기 지도부 구성이 확정된다. 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24일 "이제 새 준칙으로 보다 강하고 힘 있는 '핵심 지도자'가 중국을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 실업 관련해서도 중국의 대응은 우리와 크게 다르다. 베이징 중관춘 등지의 창업 열기는 대단하다. 첫 창업에 실패하더라도 금융·세제상 혜택을 통해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춰 놓았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사실상 2021년 9월까지 장기 집권할 수 있게 됐다. 자민당 '당·정치제도개혁실행본부' 임원회의는 26일 자민당 총재 임기를 9년으로 연장하는 당칙 개정 방침을 정했다. 자민당은 내년 3월 5일 당 대회에서 총재 임기 규정 개정을 정식 결정하게 된다.

여기에 이른 배경에는 아베 총리에 대한 높은 지지도가 자리 잡고 있다. 아베는 우리나라와 중국 등에겐 불편한 대상이지만 내정과 외교에서 상당한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에 따라 그가 추진하고 있는,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로 만드는 헌법 개정도 더욱 힘을 받게 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한민국은 지도자의 잘못으로 나라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소위 '최순실 게이트'는 '박근혜 게이트'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국기 문란을 초래한 주인공은 다름 아닌 대통령 자신이기 때문이다. 최순실이라는 블랙홀을 피해 개헌이라는 블랙홀을 택했던 그는 이제 박근혜 게이트의 블랙홀 속으로 들어가버린 형국이다. 최순실을 둘러싼 어물쩡 사과는 그가 전방위로 국정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오히려 수습 불가능 국면을 초래해 버렸다.

마침내 청년 대학생들이 떨치고 일어섰다. 이화여대를 시작으로 전국 대학가에서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시국선언은 성역없는 수사는 물론 대통령 하야를 촉구했다. 꿈을 저당잡힌 채 회색 청춘을 보내고 있던 그들이다. 지금까진 그들의 체념이 무서웠다면 이제는 분노하는 그들의 기세가 무섭다. '서강의 이름을 더럽히는 선배가 되지 말라'는 후배들의 사자후는 무얼 말하는가. '대한민국은 (내 꿈이 아니라) 최순실의 꿈이 이뤄지는 나라인가'라는 물음에 대통령은 대답할 말이라도 있는가.     
  
박근혜 게이트에 대한 성역없는 수사는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수순이 돼버렸다.  그러지 않고는 성난 청춘과 국민의 저항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이처럼 허무한 대통령이 또 다시 나와서야 되겠는가 하는 공감대가 그 토대다. 그 뒤 나라를 바로 세우는 장정에 나서야 한다. 대한민국마저 이대로 블랙홀에 빠뜨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 장정에는 당연히 개헌도 포함돼야 한다. 개헌이 절실한 시대적 과제임은 부인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다시 말할 수 있기 위해서도. 87년 체제 뒤 반복되는 실패한 대통령을 더 이상 보지 않기위해서도. 다만  현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개헌을 주도하려는 시도는 막아야 한다. 이미 식물 상태가 돼버린 그들이 나서기는 현실적으로 쉽지도 않다. 이를 틈타 정파적 이익을 앞세우는 개헌안도 경계해야 한다. 우리가 눈을 부릅떠야 하는 이유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대개조'를 이뤄내야 한다.  

이에 맞춰 '나라 다시 살리기 운동'이라도 벌였으면 좋겠다. 외환위기 당시 자발적인 금모으기 운동으로 다른 나라의 부러움을 샀듯. 갈수록 엄중해지는 주변 정세에도 불구하고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우리 처지가 개탄스럽지 아니한가.                                                                                                                            wkchong@

(아주경제 중문판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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