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야기]<61> 조선시대 정육점, 성균관 다림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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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12-0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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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조득균 기자 = 원래는 성균관이 문묘 제사에 바칠 희생(犧牲)용 고기 마련을 위해 설치되었는데, 조선 후기에 이르러 성균관의 재정이 부족해지자, 성균관의 노복들이 쇠고기를 독점적으로 확보하여 상인과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조선시대의 육류 판매점으로자리 잡게 된다.

처음에 다림방은 성균관 노복들이 사는 반촌(泮村) 근처인 동소문 성균관 관동(館洞), 현재의 성균관대학교 인근에 위치했다. 하지만 17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육류소비가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면서 다림방의 수요는 크게 늘어난다.

양반층을 비롯해 중인층을 중심으로 육류소비가 크게 늘어나고, 소도살 엄금 정책이완화되면서 양반과 중인들이 사는 북부, 중부 지역뿐 아니라, 동부의 이교(현재의 동대문 근처), 광례교(현재의 명륜동 근처), 남부의 광통교(현재의 종각 근처), 저동, 호현동(현재의 회현동 인근), 의금부 근처, 서부의 육조거리 등지에까지 다림방이 설치된이는 조선의 생활수준 전체가 크게 향상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

일부 소수의 귀족들만이 향유했던 육류소비를 일반 시민들까지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들 지역은 이후에도 왕십리의 곱창, 마포의 갈비 등 다양한 고깃집과 음식점으로 이어지면서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자 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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