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전설'서 대망론까지…친박 꼬리표 '대선 멍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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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1-12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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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주 人 인물 탐구] 외교관 꿈이었던 가난한 집 수재

  • 1년에 2번 승진…전무후무 기록

[사진=아주경제 DB ]

아주경제 강정숙 기자 = '기름장어' 반기문.  "조용하지만 의뭉스러운 리더십 안에는 강인함이 있다." 전직 외교관이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에 대한 평가다.

또한 반 전 총장에 대한 '조용한 리더십'이라는 평가에 대한 명쾌한 답이다.

대선 주자 반열에 오른 반 전 총장을 두고 서구 언론이 비판한 것도 그의 '조용한 리더십'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반 총장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 부르며 "반 총장은 독재자들의 잔혹 행위에 대해 너무 자주 침묵하며 유엔을 추악한 타협의 무대로 만들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반 전 총장이 외교 무대로 나서게 된 시작은 어디일까. 그는 일찌감치부터 외교관을 꿈꿔왔다.

1944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3남2녀 중 장남으로 부친은 정미소 종업원이었다. 밥 굶을 일은 없었지만 가난했. 어려서부터 명석한 두뇌와 성실함으로 늘 1등하는 학생이였다. 그는 영어 과목을 가장 좋아했다.

1962년 충주고 재학 시절, 갈고 닦은 영어실력으로 미 정부가 주최하는 영어 말하기 대회에 나가 입상해 부상으로 그 시절 미국 구경의 기회를 갖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3회 외무고시에 합격, 1970년 외무부에 들어갔다.

그는 차관보와 차관 등의 요직을 거치고 김영삼 정후 후반기인 1996년 3월부터 1998년 2월 까지 청와대의 외교안보수석 비서관을 지냈다.

당시 주변에선 "정권이 바뀌면 피해를 볼지 모르니 청와대에 너무 오래 있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많이 말렸지만 그는 "공무원이 어떻게 부여된 임무를 거부하느냐"며 지론대로 움직였다.

2001년 9월 제56차 유엔총회의장 비서실장, 2002년 9월 동 본부 대사, 2003년 2월에 노무현 정부의 외교 정책 보좌관을 지냈다.

2004년 1월에는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그해 6월 '김선일 피살사건'이 일어났을 때 국민들의 질타가 쏟아져 한때 입지가 흔들렸으나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2006년 2월 유엔 사무총장 출마를 선언하게 됐다.

외교부 재임시절 1년에 2차례나 승진을 하는 등 '외교부의 전설'로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외교무대에 익숙한 그가 왜 험난한 국내정치의 소용돌이 지름길인 대선주자에 등극하려 하는 걸까. 계기는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었다.

박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해 방문 기간 중 반 전 총장을 7번이나 만났다. 이는 친박 및 청와대와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의 갈등과 맞물리며 친박계가 차기 대권주자로 반 총장을 찍었다는 ‘설’로 확장됐고, 반 전 총장은 '김무성 대세론'에 맞서는 '대망론'의 주인공이 됐다.

여권 일각에서 반 전 총장을 대선후보로 찍었다는 이야기는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2014년 말 새누리당 내 친박모임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에서 반기문 대망론이 등장했다.
 
외교통상부 장관에서 유엔사무총장에 이르기까지 반 전 총장은 부드러움과 강인함을 겸한 인물로 통한다. 따뜻한 표정과 매너, 그러면서도 한번 마음 먹은 일은 반드시 이루는 강한 의지를 가졌다는 게 주변의 대체적인 평가이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은 가족과 지인들에게 그다지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다. '일' 외의 것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반 전 총장도 유엔 사무총장 출마를 결심했을 즈음, 사석에서 "대학 때 바둑 등의 취미를 가져보려고 했지만 그보다는 학습에 시간을 더 집중하고 싶어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다. 그 시간에 영어와 프랑스어 등의 공부에 집중했던, 시쳇말로 '범생'인 셈이다.

외교부 내에서 그는 '특별히 기수가 없다'고 해서 '특기'로 통한다. 무엇보다도 외교가에선 그의 인품과 성실함을 높이 산다. 상하좌우의 모든 인사들로부터 신뢰를 얻은 그는 '성실함'으로 유명하다.

또한 부드러운 지도력의 대가로 불리는 그는 유엔이라는 조직이 강대국들의 역학관계로 움직인다고 하지만, 일로 충돌해도 절대 화를 내지 않는 부드러움과 한번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이루는 강한 의지로 '외교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단 한명의 적도 만들지 않는 단 한명의 사람'이라고도 불린다.

혹자는 이를 두고 '조용한 리더십'이라며 그를 비판하기도 한다. 반 전 총장이 미얀마 등 독재자들과 싸우는 대신 대화하고 타협하는 방식의 외교를 펼쳤다는 점이 비판의 근거였다.

이는 전임자인 코피 아난 총장과 대비된다. 아난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등 자기 목소리를 크게 내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원칙을 지키는 강인함으로 ‘외유내강’형의 의뭉스러운 그의 리더십에 환호한다. 

유엔본부 담당 기자였던 남정호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저서 '반기문, 나는 일하는 사무총장입니다'에서 “(반 총장은) 큰 소리를 내며 맞서기보다 조심스레 다가가 서로 간의 믿음을 쌓은 뒤 상대방 입장을 들으며 문제를 해결한다”고 평가했다.

반기문 총장은 스스로 자신의 리더십의 핵심을 '겸손'으로 꼽았다. 그는 총장 수락 연설에서 "겸손은 결코 헌신이나 통솔력의 부족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겸손은 요란한 팡파르를 울리지 않고 과업을 완수하는 조용한 결단력"이라고 밝힌 바 있다.

1985년 노신영 총리 임명 이후 반 전 총장이 외무고시 동기들은 물론 선배들을 제치고 가장 먼저 승진하자, 반 총장이 동기들과 선후배 100여명에게 "일찍 승진해서 죄송하다"는 편지를 써서 돌린 일화는 유명하다. 반 총장은 이런 방식으로 구설수에 오르지 않으며 외교사회에서의 평판을 유지했다.

그렇다고 반 총장이 자기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이를 잘 드러내지 않은 조용조용한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이하원 조선일보 기자의 저서 '조용한 열정 반기문'에는 반 총장의 고향 선배인 안영수 경희대 영문과 교수의 증언을 빌어 '"반 총장은 어릴 때도 한 번도 '나는 이런 것을 원해, 이런 것을 갖고 싶어'라는 말을 입 밖에 내거나 밖으로 표시한 적이 없다. 그러나 속으로 5년, 10년 앞을 계획하고 조용히 그 길을 밟아나가는 사람이다. 겉은 한없이 부드럽지만 속에는 칼과 쇠가 들어있다"고 말한다.

실제 한 전직 외교관은 반 전 총장에 대해 "일각에서 대선 대망론이 불거지고 난 후 (반 전 총장이) 국내정치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 처럼 말하는데, 그는 일반 국회의원들 보다 더 꼼꼼히 오랜시간 사안을 파악하고 있고 '속이 굉장히 단단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대신 대화하고 타협하는 방식의 외교를 펼쳤다는 점이 비판의 근거였다. 이는 전임자인 코피 아난 총장과 대비된다. 아난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등 자기 목소리를 크게 내는 스타일이었다. 유엔본부 담당 기자였던 남정 이하원 조선일보 기자의 저서 '조용한 열정 반기문'에는 반 총장의 고향 선배인 안영수 경희대 영문과 교수의 증언이 나온다. 안 교수는 “반 총장은 어릴 때도 한 번도 ‘나는 이런 것을 원해, 이런 것을 갖고 싶어’라는 말을 입 밖에 내거나 밖으로 표시한 적이 없다. 그러나 속으로 5년, 10년 앞을 계획하고 조용히 그 길을 밟아나가는 사람이다. 겉은 한없이 부드럽지만 속에는 칼과 쇠가 들어있다”고 말한다.
호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저서 '반기문, 나는 일하는 사무총장입니다'에서 “(반 총장은) 큰 소리를 내며 맞서기보다 조심스레 다가가 서로 간의 믿음을 쌓은 뒤 상대방 입장을 들으며 문제를 해결한다”고 평가했다.
ㅈ총장은 스스로 자신의 리더십의 핵심을 ‘겸손’으로 꼽았다. 그는 총장 수락 연설에서 “겸손은 결코 헌신이나 통솔력의 부족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겸손은 요란 팡파르를 울리지 않고 과업을 완수하는 조용한 결단력”이라고 밝혔다. 1985년 노신영 총리 임명 이후 반기문 총장이 외무고시 동기들은 물론 선배들을 제치고 가장 먼저 승진하자, 반 총장이 동기들과 선후배 100여명에게 “일찍 승진해서 죄송하다”는 편지를 써서 돌린 일화는 유명하다. 반 총장은 이런 방식으로 구설수에 오르지 않으며 외교사회에서의 평판을 유지했한다.
외신에서 반 전 총장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soft spoken'이다. 직접적으로 꼬집기보다는 에둘러 표현하는 게 그의 스타일이다. 속에는 온갖 감정이 요동쳐도 겉으로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작약한, 전형적인 '충청도식 양반 기질'이다.

이하원 기자는 책에서 공로명 전 외교부장관의 말을 빌어 "영민한 독수라는 발톱을 감춘다는 말이 있다. 반 총장에게 잘 어울리는 표현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성격이 부정적인 인상을 주기도 한다. 지나치게 윗사람들에게 굽신거린다는 평가다. 이하원 기자는 “반 총장은 국회에서 자신보다 15년 이상 어린 국회의원들이 질문할 때 '○○○의원께서 하문하신' 같은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며 “당시 여당의 한 의원은 ‘반 차관의 말을 듣다보면 감언이설로 우리를 속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고 불신감을 표현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관운'이 좋기로 유명한 반 전 총장은 한 때 '주사'라는 별명을 갖기도 했다. 고위직이면서도 그 직급에 관계없이 자질구레한 일도 손수 챙겼데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한다.

배려가 몸에 밴 탓인 지 장관시절만 해도 부하 직원에게 출입문을 열어주는 친절을 베풀어 상대를 당황스럽게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와는 달리 업무와 관련해서는 철두철미하고 솔선수범형으로 통한다.

미흡한 점과 잘못은 분명히 지적하고, 대안을 요구해 어지간한 준비없이 보고했다가는 당황하기 일쑤라는 것. 그러나 부드러운 어법을 사용하고 질책하는 일은 거의 없어 부하직원들이 보고를 꺼리는 일은 없다고 한다.

그의 부지런함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일요일 출근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며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는 게 몸에 배어있다. 미국과 유럽, 중동, 아프리카 출장의 경우 시차를 감안해 이동하는 시간에 비행기에서 숙박하는 일정을 잡는 게 다반사다.

그는 별도의 체력관리를 하지 않으며 "일하는 것 자체가 체력관리"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특히 '낮잠'을 자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반 장관은 충주고와 충주여고간 학생회장단 간부 교류로 만난 유순택 여사와의 사이에 선용과 현희, 우현씨 등 2녀1남을 두고 있다. 

하지만 최근 그의 동생인 동생인 반기상씨와 조카 반주현씨가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에 뇌물 혐의로 기소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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