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한준호 기자 = 대선 후보들이 가계 통신비 인하를 내세우며 표심 공략에 나서고 있다. 각 후보들은 유권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통신요금을 줄이겠다는 공약을 뒷받침할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미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됐거나 현실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공약(空約)’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관련 업계와 학계는 평가하고 있다.
◆ 대선후보들 너도나도 ‘통신요금 인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통신비 부담은 가중되고 있지만 이동통신 3사의 영업이익은 크게 늘었다는 점을 들어 ‘소비자는 요금폭탄, 기업은 요금 폭리’라는 구도를 내세우고 있다.
문 후보는 지난 11일 월 1만1000원의 통신 기본료를 완전히 폐지하고, 오는 10월 일몰을 앞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을 앞당겨 개선해 단말기 지원금 상한을 없애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제조사와 통신사의 단말기 지원금을 따로 공시하는 ‘가격 분리 공시제’를 도입하고, 5G 주파수 경매에 통신비 인하 항목을 추가해 통신사가 스스로 통신비를 인하하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안 후보는 제4 이동통신사를 투입해 소비자의 선택을 늘려 가격경쟁을 활성화하고, 모든 국민을 ‘호갱’으로 만드는 단통법을 개선하며, 저렴한 알뜰폰으로 통신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저소득층과 장애인, 청소년, 취업준비생에겐 매월 기본데이터도 무료로 제공한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서민과 약자를 위한 맞춤형 가계통신비 대책을 내놨다. 홍 후보는 지난 14일 청년실업자가 취업준비를 위해 인터넷 강의를 이용할 때 수강료를 50% 할인하고, 청년실업자와 창업자, 소상공인 등에게 데이터를 추가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통해 취업 준비생 36만5000명이 연간 876억원의 통신비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아직 가계통신비 관련 공약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통신사업자가 기술개발에 소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기본료 폐지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지난 11일 무제한 음성 통화와 문자 메시지, 2GB의 데이터를 보장하는 보편 요금제 출시를 통신사에 의무화하고, 주파수 경매를 요금 인하와 연계시키며, 통신비 심의위원회의 설치, 단말기 가격 거품 제거, 제4이동통신 도입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 文·安, 통신정책 차별화··· ‘5G·해외로밍·알뜰폰’
대선후보자들 중 접전을 벌이고 있는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통신요금 인하 중심의 통신정책 공약 이외에도 차별화된 정책을 내놨다.
문재인 후보는 차세대 이동통신기술인 5G 네트워크를 정부가 직접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이통3사의 개별중복 투자를 방지하고 네트워크의 공익성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설명이다.
또 한국과 중국, 일본 간 해외로밍요금의 폐지를 추진하겠다는 공약도 내세웠다. 문 후보는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한·중·일의 경제·문화 협력이 절실하다는 점을 내세워 관련 국가가 협의해 해외에서 음성전화를 사용할 때도 국내처럼 부담 없이 통화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안철수 후보는 최근 700만 가입자를 돌파한 알뜰폰의 지속적인 확대를 위해 알뜰폰 사업자에 대한 지원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특히 알뜰폰 사업자의 경영상태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전파 사용료 면제의 연장과 4G망 도매대가 인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 유도, 기간제한 없는 의무제공 제도화, 정부차원의 알뜰폰 브랜드 홍보와 마케팅 지원을 들고 나왔다.
◆업계·학계 “과도한 시장개입”, 시민단체 "실현 가능성 낮아"
대선 후보자들이 너도나도 제시한 가계통신비 인하 공약에 대해 통신사업자들은 “과도한 시장 개입”이라는 공통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업계는 특히 문 후보의 기본료 폐지 공약에 대해 “대부분의 이용자들이 기본료와 통화료 구분이 없는 통합 요금제를 이용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만약 월 1만1000원을 기본료 폐지 명목으로 일괄적으로 인하할 경우 기본적인 투자가 어려울 정도의 적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성엽 서강대 교수(ICT법경제연구소 부소장)는 “기본적으로 통신사업자들은 ICT생태계의 첫 번째 시발점” 이라며 “통신사업자들의 네트워크 투자가 있어야 그것으로 인해 단말, 장비, 콘텐츠 업체들의 후발적 투자가 이뤄지는 선순환구조”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런 생태계 속에서 통신사업자들의 네트워크 투자 유발에 대한 인센티브가 없어진다면 당장은 국민들이 요금인하로 혜택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길게 보면 ICT 산업 전체가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문재인 후보의 기본료 폐지와 같은 경우 정부가 통신사업자들의 요금 책정을 지정할 권한이 없는 상태에서 자율적인 요금체계를 흔들면 과도한 시장 개입으로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녹색소비자연대 ICT소비자정책연구원은 문 후보의 ‘5G 국가투자’에 대해 “한·미 FTA로 인해 한국 정부가 국영통신사를 운영할 수 없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실현이 어려울 것”이라며 “정부가 망을 깔고 운영하려면 역할을 대행할 수 있는 공기업이 필요한데 통신 분야는 공기업을 만들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일본 통신업계 관계자는 한·중·일 해외로밍 요금 폐지에 대해 "일본 사업자들에게 인센티브가 없고, 가입자 규모가 다른 상황에서 해외로밍 폐지를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며 "올림픽이 한·중·일에서 연이어 열린다는 점에서 그런 아이디어가 나올 수는 있겠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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