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도시바 메모리 인수전에 뛰어든 SK하이닉스는 현재까지 수면 아래에서 조용히 인수 작업을 진행중이다. 지난달 19일 도시바 메모리 2차 입찰 참여한 직후 SK하이닉스는 미국 사모펀드인 베인캐피탈이 주축이 된 특수목적회사(SPC)에 일부 자금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참여했다고 알려진 것이 전부다. 베인케피탈은 도시바 메모리 지분 51%를 인수하는 한편 일본 관민펀드인 산업혁신기구(INCJ)에도 지분 참여를 타진, ‘한·미·일 연합군’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SK측은 “기밀유지협약에 따라 입찰에 참여했다는 점만 빼곤 모든 사항에 대해서는 사실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와 관련, 재계 고위 관계자는 “굵직한 기업 인수·합병(M&A) 경험이 풍부한 SK의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불필요한 감정 건드리기로 도시바는 물론 일본 국민 정서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뜻이다”라면서 “일본 전자·반도체·IT 업체들이 한국기업에 밀려나면서 한국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다. 베인캐피탈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도 막대한 인수금액 조달과 함께 상대적으로 미국에 우호적인 일본내 정서를 반영한 명분을 세운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럴 경우 INCJ도 부담없이 지분 출자가 가능하고, 일본 정부의 승인도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일본의 자존심이라 불렸던 엘피다 메모리가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에 인수된 후에도 경쟁력을 제대로 키우지 못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와의 경쟁에서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평범한 기업에 된 것에 대한 상처가 크다”면서 “SK하이닉스는 도시바 메모리 육성책으로 경쟁사와 비교 우위에 서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며, 업계에서는 이같은 내용의 육성책을 도시바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한편, 도시바는 오는 28일 정기 주주총회까지 도시바 메모리에 대한 매각절차를 완료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에 따라 이르면 이번주 안으로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가능성이 높다.
인수전은 혼돈상황이다. 도시바에 출자해 낸드 플래시 메모리를 생산해온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이 자사가 인수해야 한다며 도시바측과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홍하이 정밀 공업이 인수전 참여 업체들 가운데 가장 많은 2조 수천억엔대 인수액을 제시한데 이어 애플과 아마존 등이 출자를 통해 공동 참여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또 다른 참여업체인 미국의 브로드컴도 홍하이 다음으로 높은 2조원대 인수액을 제시한 상태다.
다만, 이들 업체들 모두 문제점을 안고 있다. WD은 51% 이상의 지분을 요구했던 기존 입장을 철회하고 지난 5일 19.9%만 갖겠다는 양허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여전히 자사가 인수해야 한다는 점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럴 경우 도시바 메모리의 인수 금액은 크게 낮아져 그룹 재건 자금을 필요로 하는 도시바로서는 낭패를 보게 된다. 홍하이는 낸드 플래시 반도체 핵심 기술이 중국에 유출될 가능성이 높아 일본 경제산업성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또한 홍하이가 샤프 인수 당시 초반에 7000억엔 이상의 금액을 제시했다가 최종 계약 때는 4000억 엔 이하로 낮춘 것에 대해 도시바측의 경계가 강하다.
브로드컴은 도시바 메모리와 중복 사업이 적고 반독점 심사도 단기간에 끝낼 수 있어 고가 매각을 노리는 도시바에 매력적인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브로드컴은 지난 3년간 5개 이상의 기업을 인수하며 회사 매출의 2배에 달하는 247억달러(한화 27조6640억원)를 지출했다. 인수 후 위험 부담을 안고 도시바 메모리에 대한 설비투자를 지속할 수 있을지, 고용을 유지할 수 있을지 등의 여부가 불투명하다. 이러한 맹점을 활용한다면, SK하이닉스의 막판 대역전극 연출이 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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