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인천 기수정 기자] 신포국제시장이 자리한 신포동의 옛 지명은 ‘터진개’. 강 따위에 트이어 있는 개천이란 뜻의 이 이름은 새로운 개를 뜻하는 ‘신포(新浦)’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듯하다.
신포시장은 19세기 말부터 장이 섰던 곳이다. 객주 정홍택 형제가 최초로 생선전을 운영했다는 이곳은 중국인 농부들이 들여온 양파, 당근 등 새로운 야채들이 많아 푸성귀 시장이라고도 불렸다.
닭강정과 쫄면을 필두로 다양한 먹거리로 유명한 신포국제시장에는 유독 중국 냄새 폴폴 풍기는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왜일까.
1883년 근대화 바람을 감내해낸 ‘개항항’ 인천은 명실공히 대한민국 서해의 관문으로 우뚝 섰다.
개항항을 따라 많은 사람과 물건이 들고 났지만 특히 중국 산둥 지방 사람이 인천에 많이 오갔다. 지리적 특성상 인천과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천에 화교들이 하나둘씩 둥지를 틀었고 야채들을 내다 팔며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처음엔 푸성귀였지만 바다가 가까운 인천이니 해산물이 빠질 수 없었고 어시장이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신포국제시장은 인천 최대 시장으로 성장했다.
그러던 중 신도시가 개발되고 대형 마트들이 속속 문을 열면서 신포국제시장 상인들의 시름도 더해졌지만 이곳에서 맛볼 수 있는 다양한 먹거리가 신포국제시장을 든든히 지켜 주었다.
세종대왕이 등장하는 만 원짜리 지폐와 퇴계 이황 선생이 그려진 천 원짜리 지폐 몇 장만 있으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그곳, 소소한 즐거움과 푸근한 인심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그곳, 인천 중구 신포국제시장으로 떠났다. 소박함이 묻어나는 전통시장에서 근사한 나만의 먹방을 즐길 수 있었다.
개항 이후 100여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함께 한 신포국제시장은 매콤달콤한 닭강정, 안은 텅 비었지만 그 달콤한 맛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공갈빵, 육즙이 풍부한 중국식 만두 등 다양한 먹거리가 즐거운 유혹을 하는 곳이다. 아, 이곳은 쫄면의 근원지이기도 하다.
◆달콤하면서도 매콤한 그 맛에 중독되다···신포 닭강정
학생 때 먹던 닭강정이 그리워 20대 초반에는 주말마다 찾기도 했지만 점점 세월이 흐르고 추억으로 남았던 그곳을 다시 찾았다.
포장해 가는 줄과 먹고 가는 줄을 잘 선택해 자리하고 주문을 하면 바쁜 손놀림이 시작된다.
한쪽에서는 닭을 튀겨내고 튀겨진 닭은 커다란 솥에 옮겨져 매콤달콤한 옷을 입는다. 담백한 맛을 좋아한다면 소스를 입혀내기 전 상태인 후라이드 치킨으로 맛볼 수 있다.
에전에는 매콤한 맛과 순한 맛을 고를 수 있어서 좋았고 지금은 그 두 가지 맛을 모두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윤기가 흐르는 소스에 고추와 깨를 뿌려 매콤하면서도 고소함을 더한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닭강정 한입 베어 무니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
그 달콤한 맛에 반해 이미 소스가 묻은 닭에 소스를 듬뿍 묻혀 먹다 보면 어느새 이마에 땀이 맺힌다. 달콤하면서도 매운 그 맛에 중독이 돼 젓가락질(여기서는 양손이 젓가락 역할을 톡톡히 한다.)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쫄깃한 수제 어묵 한 입이 주는 행복
평소에 핫바나 어묵 등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발길을 멈추고 한참 동안을 쳐다봤다. 마치 어묵은 먹고 싶지만 돈이 모자라 침만 꿀꺽 삼키고 있는 어린아이처럼.
어묵으로 만든 치즈 핫바, 고추 핫바, 소시지 핫바, 김말이 핫바 등 그 종류는 다양했다.
"한 번 튀겨 바로 나온 따뜻한 핫바는 퍽퍽한 느낌이에요. 식으면서 식감이 찰져요. 그렇게 식은 핫바를 한 번 더 튀기면 겉은 바삭하고 안은 쫄깃해요."
소박한 핫 바 한 개. 한 입 베어 무니 고소한 치즈의 향이 감싸는 입안은 행복이 가득했다. 배부른 것도 잊고 핫 바 한 개를 그 자리에서 먹어치웠을 정도로...
◆육즙이 가득~팥이 가득~중국식 만두·찐빵
먹지는 못해도 다양한 맛 구경에 절로 신이 난다. 그러던 중 공갈빵과 중국식 만두, 손바닥 하나를 채우고도 넘치는, 커다란 찐빵이 눈길을 끈다.
우리 전통시장에 웬 중국식 만두에 공갈빵을 팔까? 예전 인천항으로 들고나는 배들의 짐을 운반하는 일을 하며 ‘짜장미엔’을 만들어 먹었던 화교들의 흔적이란다.
개항항으로 흥하던 시절 사람도 물건도 들고 났던 이곳 신포시장에 화교들도 둥지를 틀고 장사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곳을 기웃거리고 있자니 옆의 어느 중년 여성이 말을 걸어온다.
"여기 오면 만두랑 찐빵은 꼭 사 가세요. 저는 부천에서 왔어요. 만두는 고기에서 나오는 육즙이 맛있고 찐빵엔 어쩜 그렇게 팥이 가득한지...그 맛에 반해 전 이 만두와 찐빵을 사러 1주일에 한 번씩 온다니까요."
열성 팬까지 있다니. 닭강정 못지않은 인기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판에서 방금 꺼낸 중국식 만두 한 입을 물려주었다. 아, 부인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내친김에 화덕에서 갓 구워낸 공갈빵 한 개와 팥이 가득하다는 찐빵 두 개를 포장했다.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신포국제시장. 그곳에서 맛본 음식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그 맛은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도 훌륭했다.
인심 가득한 우리네 정이 느껴지는 공간에서 보낸 반나절, 아직까지 간직하는 고교 시절 신포국제시장에서의 추억의 한 페이지에 오늘 이시간의 추억을 채워 넣으며 시장 나들이를 끝냈다. 지갑은 얇아졌지만 배불리 먹고 양손 가득 먹거리를 들고 나오는 마음은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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