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 유학을 하던 시절이었다. 재밌게도 세계지도가 있는 곳이면 으레 작은 한·일전이 벌어지곤 했다. 안타깝게도 지도마다 동해는 ‘sea of japan’으로 표기되어있었는데, 그곳엔 어김없이 ‘East sea’라고 정정해놓은 글이 있었다. 며칠이 지나면 ‘East sea’는 지워지고 그 위에 ‘sea of japan’이 덮어씌워지고 또 ‘East sea’가 새겨지고 그렇게 반복되고 있었다.
최근 영화 ‘군함도’를 놓고 말들이 많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는 ‘일본을 나쁘게만 그리지 않아서 좋았다’는 말을 했고, 영화엔 도입부부터 ‘픽션’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일부 네티즌들은 평점 테러에 나서기까지 했다.
예전에 유학시절 필자가 작은 한·일전이 벌어지는 세계지도를 볼 때마다 "그래도 사유물에 낙서하면 안 되지!"라며 혼자 양반인척을 했듯이 군함도에 대한 갑론을박에 대해서도 일부분 그러하다.
이런 현실에 비해서 짧은 생애동안 무려 17번이나 투옥되어 수인번호가 이름이 된 누군가의 불굴의 의지는 지옥섬 군함도를 오락거리 픽션 영화로 전락시켰다. 그래도 역사를 전승하고 있는 우리 후손들까지도 온전히 지켜낸 숭고한 정신이 있었기에 필자가 감히 총체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겠다.
다만, 나 혼자 이렇게 고고한척할 수 있는 자유, 역사를 픽션이라 부를 수 있는 자유, 여전히 친일파로 이 땅에 살아갈 수 있는 그 자유, 이런 자유들을 영웅이라고 불릴 수 있는 분들 덕분에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겨울 끝자락에서 피어나는 매화의 향기가 아직 눈도 내리지 않는데 홀로 그리운 그 까닭이 있겠다. 50년도 훨씬 지난 역사 속의 인물들을 그리워할 수 있어 좋았다.
■쌈마이웨이
평범한 하루였다. 여름밤답게 적당히 습하고 매미가 울어대고 있었다. 파란불이 켜졌고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어? 이상하다? 왜 버스가 안 멈추지?’ 나는 ‘꺅’ 비명을 질렀고 버스는 ‘끼익’하는 굉음과 함께 겨우 멈춰 섰다. 기사가 전방주시를 하고 있지 않던 탓이었다. 1cm쯤 남겨뒀을까? 정말로 죽을 수도 있었던 몹시 큰 사건이었다.
하지만 죽을 수도 있었던 것이지 죽은 것은 아니니 결국 이것은 아무 일도 아니다. 그렇다. '어쩔 수도 있었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아무 일도 아닌 거로 사라진다.
문득 한동안 화제였던 드라마가 떠올랐다. 6년 동안 사랑했지만 새로 들어온 인턴에게 남자친구가 흔들리고 그렇게 여자의 세상이 무너졌던 이야기다. 아마 그는 한번, 잠깐의 실수인 흔들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연인은 그 흔들리는 눈빛 한 번에, 흔들리는 마음 한 번에 모든 것이 처참히 무너지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분명히 아픈 곳은 내 마음일텐데, 이건 추상적인 개념일 뿐일텐데 염산을 퍼붓기라도 하는 것처럼 온 마음이 물리적으로 녹아내리는 느낌처럼 말이다. 소중히 간직해온 추억은 산산이 부서졌고 어쩌면 그에게 반쯤은 미쳐있었던, 둘의 미래를 꿈꾸던 그 예쁜 모습은 사라져버렸다. 영원히.
드라마로 끝났으면 좋았을 테지만 그 날은 나에게 한동안 잊고 있던 그를 떠올리게 했다. 우리는 사랑할 수도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주말 아침에 문어모양 소시지를 구워먹으며 대학시절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눌 수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영원히 행복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럴 수 있었던 것이지 그러지 않았으니 결국 이 모든 것은 아무 일도 아니다. 그래서 이제 그는 내게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연인을 옆에 두고 흔들리는 이가 있다면 전하고 싶다.
당신이 버릴 수도 있는 하나는 마음을 다해 당신을 아끼고 사랑한 연인이다. 그리고 당신이 갖게 되는 선택은 애인 있는 남자에게 들이댄, 또 다른 누구에게 언제든 다시 그럴 수 있는 여자다.
그렇지만, 그런데도 모두가 행복하길 바랄 뿐이다
■오즈의 마법사
그리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용기를 갖기 위해, 지혜를 얻기 위해,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기 위해, 도로시와 친구들은 대마법사 오즈를 찾아 긴 여행을 떠난다.
갖은 고초를 겪고 겨우 도착하게 된 오즈의 성.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소원을 이뤄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오즈는 대마법사는 마법의 ‘ㅁ’도 모르는 일개 사기꾼에 불과했다.
세상이 무너진 듯 도로시와 친구들이 절망하던 바로 그 순간, 그들은 문득 어떤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무서운 괴물과 맞서 친구들을 지킨 것은 겁쟁이라 놀림 받던 사자라는 것. 영리한 꾀로 어려운 상황을 항상 헤쳐나간 것은 어리석다 자책하던 허수아비라는 것. 자신을 희생해가며 누구보다 친구들을 아끼고 사랑한 것은 마음을 잃었다 낙담했던 양철나무꾼이었다는 것. 무엇보다 도로시의 발에는 처음부터 소원을 이뤄주는 구두가 신겨져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거기 당신! 어느새 2017년도 반이나 더 지나버렸다며 한탄했다면, 한번 아래를 내려다보길 바란다. 당신의 발에도 이미 반짝이는 은색 구두가 신겨져 있지는 않은지? 그렇다면 눈을 감고 뒤 굽을 세 번 부딪혀보길, 하나, 둘, 셋! 자! 이제 눈을 뜨면 아직도 참 멋진 2017년의 하반기가 남아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글=이소옥 작가 #버터플라이 #청년기자단 #김정인의청년들 #지켄트북스 #청년작가그룹 #지켄트 #지켄트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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