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
요즘 가요계를 보면 딱 이 속담이 생각난다. '프로듀스 101'이 시즌 1에 이어 2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난 뒤 지상파 방송사까지 오디션 프로그램에 뛰어들 태세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케이블방송인 엠넷 ‘프로듀스101’시즈2가 탄생시킨 아이돌그룹 ‘워너원'은 이제 갓 데뷔한 그룹이지만,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지난 7일 발표한 데뷔 앨범 타이틀곡 ‘에네제틱’은 음원 차트를 싹쓸이했고 계속 1위를 유지하며 가요계를 강타했다. 음반 초동 판매량은 3만 장만 나가도 ‘대박’이라고 하는 흥행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53만 장을 기록, 가요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미 전 멤버들이 지상파 예능프로그램 출연이 줄을 이은데다 화장품, 과자 등 각종 광고에도 등장해 이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앞으로 더 커질 전망이다.
프로듀스 101 시즌 1의 인기도 만만치않다. 시즌1에서 탄생된 걸그룹 '아이오아이' 출신 김세정은 KBS 드라마 '학교'의 여주인공으로 등장했고 전소미는 런닝맨, 언니들의 슬램덩크 등에서 메인으로 출연중이며 채정안은 SBS 드라마 '다시만난 세계'에서 여주인공의 어린시절을 맡는 등 지상파로 진출해 활약을 펼치고 있다.
방송사에서 이같은 성공을 가만히 보고 있을 리 없다. KBS는 이미 아이돌 재기 프로그램인 ‘더 유닛’을 론칭, 오는 10월부터 방송에 내보낼 예정이다. 다른 방송사도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을 진행하겠다고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사가 아이돌 매니지먼트까지 관여하려는 것이 과연 연예기획사에 득일지, 실일지 파장이 일고 있다.
한국매니지먼트연합, 한국음악콘텐츠협회, 한국연예제작자협회로 구성된 '음악제작사연합'은 9일 방송사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과 관련 "최근 이슈화 되고 있는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한 방송 미디어의 매니지먼트 사업 진출을 반대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음악제작사연합은 "대기업 및 방송 미디어의 음악산업 수직계열화가 공고해질 것"이라며 "대기업 및 방송 미디어는 이미 음원 유통과 판매, 음원 제작, 공연을 아우르는 형태의 수직구조를 갖추고 최근 매니지먼트의 영역에까지 진출한 상태다. 이는 엔터테인먼트 전체의 수직계열화를 가져와 모든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한 산업구조를 야기할 것이다. 이러한 방송 미디어의 음악산업 수직계열화는 음악 생태계를 급격하게 변질시킬 것이라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고 지적했다.
또 변칙 매니지먼트의 문제점을 우려하며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한 아티스트들을 1~2년 단기적으로 전속화해 수익을 창출하는 단타형 매니지먼트 회사가 이미 현실화 되고 있다. 이는 다양한 연습생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겠다는 취지와는 달리 방송 미디어의 (음반 공연 광고 행사 등 분야를 막론한) 수익 극대화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한 방송 미디어가 가지는 공익성과 공정성은 점점 훼손되어 가고 불공정한 구조의 확장으로 음악산업의 위축을 불러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소기획사들이 단순 에이전시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고도 호소했다. 음악제작사연합은 "가요계를 살리겠다는 프로그램의 기획의도와 달리 중소 제작사들을 몰락시키는 폐해를 낳고 더 나아가 음악산업 전반의 기형적 변형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중소 업체들은 생존을 위해 창의적 시도를 제한받는 것은 물론, 방송 미디어가 아이돌 그룹 구성원을 뽑는 프로그램에 자사 소속 아티스트들을 단순히 소개하는 역할에 국한된 에이전시로 전락해 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음악제작사연합은 "현재 포맷의 프로그램은 매니지먼트까지 진출해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체를 독식하려는 방송 미디어의 권력의 횡포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는 공정하고, 상생하는 산업 질서를 만드는 일에 방송사가 동참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 방송사가 매니지먼트 권한까지 취득한다면 중소기획사로서는 속수무책이다. 자본도 규모도 영향력도 미미한 중소기획사는 애써 키워낸 연습생을 고스란히 방송사에 빼앗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프로듀스 101’ 성공 후 여러 프로그램이 준비 중인데 현재 활동 중인 아이돌이나 연습생의 출연을 강요 아닌 강요 받고 있다. 중소 기획사 입장에서는 오래 고생해 온 연습생들이 성공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막상 뜨지못해 실패한 연습생인 것처럼 방송에 비춰지는 것도 안타까워 출연이 망설여진다. 그러나 방송사에 출연을 거절할 때 방송사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지도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물론 역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소 기획사 입장에서는 큰 돈을 들여 양산해내야 하는 아이돌을 단기간에 쉽고 빠르게 팬덤을 양성해 유명 아이돌로 만들어낼 수 있다. 한 기획사에서 수많은 시간과 자본, 품을 들여 아이돌 한팀을 양성해내는 것보다 훨씬 손쉽다. 혹자는 이같은 시스템을 '조인트벤처'라고도 표현한다.
한 벤처회사에서 하나의 제품을 개발, 홍보해 제품화에 이르기까지 드는 시간과 비용보다 여러 회사가 결합해 하나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시간과 노력, 자본을 줄일 수 있다는 논리다. 방송으로 얻는 홍보효과까지 합친다면 가만히 앉아서 수익을 거둬들일 수도 있다.
아이돌 프로그램은 새로운 홍보의 수단이자 아이돌 산업 양성화의 순기능이 있다는 측면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방송사가 프로그램 제작에 그치지 않고 매니지먼트 사업에 진입하고 이로 인해 수익을 얻는 것은 분명 다른 문제다.
방송사가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독식하게 될 경우 연예 매니지먼트의 건전한 생태계가 파괴될 것은 자명하다. 서로가 진정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지 깊은 고민이 시급한 시점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