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仁차이나 프리즘] 中 의사결정, 지도자 독단으로 이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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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영 국립인천대 중국학술원 중국자료센터장(정치학 박사)
입력 2017-09-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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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영 국립인천대 중국학술원 중국자료센터장(정치학 박사)]


공산주의 사회는 독재사회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든 공산당 독재든 스스로가 독재임을 천명한다. 그러다 보니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의사결정이 지도자에 의해 독단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일고 있는 ‘시진핑(習近平) 1인 체제’에 대한 논란은 결국 중국의 정치체제가 최고지도자 1인에 의해 독단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는 체제라는 가정과 관련된다.

실제 문화대혁명(이하 문혁)기 중국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의 의견에 반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요즘 중국에서도 지도자가 한마디를 하면 이견을 제기할 수 없다는 의미의 ‘일언당(一言堂)’이라는 표현이 공공연히 사용되는 것도 지도자의 독단적 전횡을 보여주는 예다. 그러나 그것이 '중국에서 의사결정이 지도자의 독단에 의해 이뤄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마오쩌둥 시대 중국의 당내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은 1959년 발생한 뤼산(廬山) 회의다.

펑더화이(彭德懷)는 뤼산 회의에서 대약진운동을 비판했다가 반당으로 몰려 숙청됐다. 이 뤼산 회의는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의 정치국에서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비판할 수 없게 된 당내 정치의 비정상화의 계기로 평가된다.

펑더화이의 정상적인 비판이 반당으로 몰리면서 중공의 최고위층에서도 더 이상 최고지도자의 결정에 대한 이견이나 비판이 불가능하게 됐기 때문이다.

뤼산 회의는 이중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먼저 앞서 언급했듯이 중공에서 최고위층에서 더 이상 자유로운 논쟁이 불가능하게 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뤼산 회의 이전에는 당 내부의 논쟁과 비판이 가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뤼산 회의 이후 마오쩌둥 1인이 절대적 결정권을 갖는 체제가 형성됐지만, 여전히 격렬한 내부 논쟁은 있었다.

1964년 말 회의에서 마오쩌둥이 류샤오치(劉少奇)를 비판하면서 “당신이 얼마나 대단해! 내가 손가락 하나면 당신쯤은 타도할 수 있어!”라고 했지만, 그러한 비판 자체가 내부적 논쟁을 보여주는 것이다. 문혁 시기에 비로소 말 그대로 누구도 찍소리 못하고, 마오쩌둥의 말이 ‘최고지시’가 됐다.

문혁이 끝나고 문혁 적폐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집단지도체제가 제기됐다. 집단지도체제의 핵심은 1인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1표를 갖는 위원들이 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정치국, 정치국 상무위원회, 각급 당 위원회에서 투표로 결정한다.

물론 집단지도체제에서도 반드시 ‘1인 1표’에 의해 결정된 것은 아니었다. 중대한 문제는 덩샤오핑(鄧小平)이나 천윈(陳雲) 같은 원로들이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도 1인이 독단적으로 나선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13차 당대회의 인사 결정이다.

덩샤오핑은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물러나면서 완리(萬里)와 톈지윈(田紀雲)이 포함된 7인의 후보자를 제안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반대로 결국 5명으로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구성했다. 자신의 뜻을 실현할 수 없었던 덩샤오핑은 완리에게 “당신이 도대체 관계를 어떻게 했길래 인사가 그렇게 어렵느냐”고 힐난했다. 덩샤오핑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학자나 참모들과의 논쟁은 더 극적이다. 1988년 5월 가격개혁 과정에서 발생한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와 경제전문가들 사이의 논쟁이 있었다.

가격개혁은 1988년의 핵심 문제였다. 자오쯔양은 가격개혁을 결정하기 위해 10여명의 장관들과 협의를 하면서 경제학자인 류궈광(劉國光)과 우징롄(吳敬璉)을 참석시켰다.

급진적인 가격개혁을 주장했던 자오쯔양에 대해 학자들은 10여명의 장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총서기와 서로 얼굴을 붉히는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자오쯔양의 의견이 채택돼 가격개혁을 진행했지만, 극심한 물가상승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그 후 1988년 12월 자오쯔양은 류궈광과 우징롄, 경제 이론가인 쉐무차오(薛暮橋)를 불러 최근 1년 간 인플레이션 문제에서 과오를 범했다며 자신의 과오를 인정했다. 이에 대해 쉐무차오는 1년이 아니라 최소한 3년은 잘못했다고 비판한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최고지도자와 학자들의 논쟁도 놀랍고, 정책의 과오에 대한 최고지도자의 인정은 더더욱 놀랍다.

얼굴을 붉히는 논쟁이 통상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사례는 중국의 의사결정과정에서 학자들이 지도자의 의견을 합리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논쟁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하다.

중국이 권위주의체제이자, 폐쇄사회이기 때문에 ‘내부’에 대한 온갖 ‘억측’이 난무한다. 그러나 가끔 예외적으로 드러나는 가려진 내부는 억측과 너무 다르다.

내부는 음모와 술수의 이미지로 다가오지만, 합리적이고 자유로운 논쟁이 있다. 당의 이름으로 표현되는, 결정된 의견이 가지는 권위의 배후에 있는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자유로운 논쟁은 쉽게 간과된다.

어쩌면 중국에서 ‘내부’가 가려진 이유가 소수의 독단적 결정이 중국을 지배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해진 범위의 이너서클 내부에서 자유와 합리성이 존재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유와 합리성이 보편화되는 것을 중국 사회가 아직은 담아낼 수 없다고 생각해서 한정된 범위의 ‘내부’로 제한하고 있을 수도 있다.

소수의 지배자가 결정하고 그것을 집행하는 ‘꼭두각시’들로 운영되는 체제로 현재의 중국을 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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