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기의 즐거움]'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의 진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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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T&P대표
입력 2017-09-2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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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태주의 '풀꽃' 곰곰히 읽기(1)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의 '풀꽃'

 

[사진=binsom]
















▶ 명함을 교환하지 않은 관계

나태주시인이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라고 한 것은, 평생 화두로 삼을만한 인식론이다.

이 말은 '풀꽃'이란 대상은 자세히 보기 쉽지 않다는 점을 함의하고 있고, 그래서 풀꽃을 쉽게 예쁘다고 느끼기는 어렵다고 슬며시 전제하고 있다. 물론 풀꽃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풀꽃은 첫눈에도 예쁘고 오래 보면 더 예쁘다. 첫눈에는 예뻤다가 금방 질리는 것도 있다. 나태주의 풀꽃은 개별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풀꽃의 보편이다. 찔레장미처럼 구체적인 이름을 지니지 않은, 아직 그렇게 안면을 트고 명함을 교환하지 않은 '캐주얼한 관계'의 풀꽃이다.

▶ 작고 여리고 어린 것이 사느라고 떨고 있구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에는 보는 존재가 있고 보여지는 존재가 있다. 보는 존재는 사람이고 보여지는 존재는 풀꽃이다. 보는 존재는 이제 막 지나가다가 풀꽃의 존재를 느끼고 무릎을 꿇고 앉은 사람이고, 보여지는 존재는 지금까지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자잘한 크기와 두드러지지 않은 색깔의 키 작은 꽃일 가능성이 있다. '자세히'란 말은 시선을 통해 사람과 꽃이 특별한 프로트콜을 형성하는 방식이다.

'자세히'는 인간의 시선이, 풀꽃의 형상과 빛깔과 향기와 흔들림과 같은 것을 가만히 알아냄으로써 그것에 대한 인식의 접면을 넓혀가는 과정을 말하고 있다. 그 작은 풀꽃 속에 들어있는 우주의 질서들, 작고 여리다고 하나도 빼먹지 않은 조물주의 세심하고 정교하면서도 자연스런 솜씨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자세히 본 것은 왜 예쁜가. 만물의 '보편'과 그 보편 속에 깃든 개별적인 생의(生意)가,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다가 죽어야할 자로써 깊이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쁘다'는 말은, 대개 작은 것이나 어린 것, 혹은 여린 것에 많이 쓰이는 표현이다. 작고 여리고 어린 것이 그 생체 속에 꼬물거리는 생기와 생략하지 않은 완전함을 지니고 거기 시간의 한 겹 위에 빛나거나 떨고 있을 때, 인간은 그것이 예쁘게 보일 수 밖에 없어지는 게 아닐까.

▶ 퇴계는 왜 고개 숙인 매화를 보려고 무릎을 꿇었나

자세히 보면 자세히 알게 되고 자세히 알게된 것이 처음의 성급한 관점들을, 혹은 얕잡거나 적대하던 시선들을 교정시키면서 풀꽃의 진상을 이해하게 한다. 알게될수록 호감도가 생기게 되어 있다. 퇴계는 거꾸로 매달린 능수매화의 꽃잎을 보기 위해 몸을 낮춰 그것과 눈맞췄다. 이 성인은 사람에 대해 공경한 태도를 보인 것을 넘어, 저 식물 하나에도 무릎맞춤으로 다가가 눈높이를 맞춰주는 경(敬)을 보였다. 퇴계의 인격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무릇 풀꽃을 보는 법에 대한 지식인의 '살아있는 강의'가 아닐까.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우리가 지금껏 수많은 풀꽃에 대해 어떻게 대해 왔느냐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기도 하지만, 우리가 우리 눈에 보이는 수많은 대상을 처리하는 일상적인 방식에 대한 반성을 품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모든 사물을 자세히 볼 수 없고 풀꽃 뿐 아니라 사람도 자세히 볼 수 없다. 한번 자세히 보았다 하더라도 이내 잊어버리고 대충 보고 살거나 보지도 않고 본 것처럼 생각하고 산다.

▶ 세상의 모든 풀꽃을 자세히 볼 수는 없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성정이 게으르거나 무심해서가 아니라, 수많은 정보를 처리해야 하는 '눈'이, 알파고처럼 학습을 통해 필요하거나 절실한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해 처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자세히'는 그 효율이 지닌 통증과 부작용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시인이 아무리 '자세히 보는 법'을 역설했다 하더라도, 인간은 그 말에 잠시 공명하며 감동을 받을 뿐 실제로 모든 시선을 그렇게 처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풀꽃을 다 자세히 보며 예쁨에 찬탄하고 있으려면 생업을 포기하는 게 옳다. 다만 하나라도 가끔은 그렇게 눈 맞춰보라는 권유가 훨씬 현실성이 있다.그렇게 해야 하는 까닭은 이 세상에 태어나 풀꽃 하나와도 자세히 눈 맞추지 못하고 가는 인생이 너무 억울하고 불쌍하기 때문이다.

▶ 오밀조밀한 아내의 인생을 연민과 측은으로 들여다본 적 있나

그리고 시인이 말한 것은 풀꽃만이 아니다. '너'라고 호명된 우주의 모든 관계들이 다 풀꽃과 다르지 않다. '자세히' 보지 않고 대충 인식하고 대충 관계를 맺었기에 생겨난 적폐가 얼마나 많던가. 삶에서 뭐 하나 명쾌한 게 있던가. 제 마음 돌아볼 고요함은 있던가. 익숙하다고 띄엄띄엄 보며 남처럼 대하고 사는 가족은 어떤가. 시선의 '관성적 처리'가 낳고 있는 인생 부실들을 반성하게 한다.

오밀조밀한 아내의 감정과 표정과, 시간의 더께를 하루하루 입고 늙어가는 양상을 측은과 연민을 담아 들여다 보라. 얼마나 예쁜지 말이다. 주목(注目)! 눈을 기울이란 말이다. 건성으로 보던 것을, 마음을 담아 다시 보면 하나도 안 예쁘다고 생각했던 것이 예쁘게 되는 마법의 기적이 생겨날 것이다. 하느님이 풀꽃 감상법에 이미 설계해놓은 비밀이라고 나태주가 소근거리고 있다.

▶ 이것은 스토리텔링과 글쓰기의 꿀팁이다

'자세히'란 세 글자를 가지고 뭘 그렇게 오래, 심각하게 말하느냐고 웃을지 모르지만, 아직도 할 말은 끝나지 않았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최고의 스토리텔링이 무엇인지 혹은 가장 힘있는 글쓰기가 무엇인지 말해주는 꿀팁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표현할 때, 자주 '인식의 빅데이터'가 내놓은 요약본을 내놓기 십상이다. 뭔가를 한 마디로 말하려고 한다. 데이터 처리 방식의 효율로 보자면 그게 틀리지 않았다. 대충주의와 건성건성은 대개 그 방식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소통은, 그것만으로 이뤄지면 공허하고 건조해질 수 밖에 없다. 세상의 역사가 얼마나 재미있는 영역인가. 하지만 역사책은 온통 따분한 암기목록과 죽은 사람들의 묘비명 밖에 없다. 역사라는 어마어마한 스토리의 창고를 효율적으로 전수하겠다고 99% 죽여놨기 때문에 그꼴이 되는 것이다. 역사는 인간의 삶을 이미 살아간 사람들을 구경함으로써 영원을 호흡하는 조물주처럼 지혜로워지고자 하는 인간의 '학습파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구경시켜주는데 역사라는 과목이 무능해진 것이다. 왜 그랬을까? 바로 '자세히'를 놔버렸기 때문이다.

▶ 요약본의 공해가 자세히 표현하기를 죽여버렸다

수필이나 소설을 쓰는 것은 물론이고, 여행기나 자기 소개서를 쓰는 것도 힘겨운 까닭은 저 요약본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핵심, 스토리를 전개하는 노하우는, 자세함을 밀어붙이는 힘이라고 나는 생각해왔다. 풀꽃의 예쁨을 발견하는 순간처럼, 삶의 세세한 풍경과 곡절들이 인간의 시야에 자세하게 들어올 때, 공감과 함께 감동이 돋워지는 것이라고 나는 믿어왔다. 이야기꾼을 보라. 교장선생 훈화처럼 '야마' 잡고 핵심 잡아 그것만 반복하다가 '에또,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던가.

▶ 악마는 프라다 구두를 신고 디테일에서 살고 있다

대상의 모든 것은 자세하게 말해질 것들을 지니고 있고, 세상의 모든 것들은 세세한 말들을 건네고 있다. 아무리 재미없고 얘깃거리 없어보이는 삶을 산 사람이라도, 태어나 숨쉬고 바라보고 깨닫고 후회하고 사랑한 궤적들의 세목은 풀꽃 그 이상으로 예쁘다. 그것과 우리가 인식의 접면만 넓힐 수 있다면, 세상은 넓고 할 '얘기'는 많다. 매혹적인 악마가 디테일에 있는 까닭은, 프라다 구두를 신고 다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시사다./빈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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