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환경 변화와 함께 중국의 외교정책이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전환되고 있다.
1979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외교적으로 불개입·현상 유지원칙을 천명한 덩샤오핑(鄧小平)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조용할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 전략을 기반으로 미국 위주의 세계질서를 수용하면서 중국의 실력 키우기에 집중했다.
그러다 장쩌민(江澤民)의 제3세대 지도부가 들어서면서 '유소작위(有所作爲, 해야 할 일은 적극적으로 나선다)'를 앞세워 국제문제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중국 경제성장에 집중하면서도 국제사회에서 필요한 역할은 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이후 후진타오(胡錦濤)의 제4세대 지도부가 '화평굴기(和平崛起, 평화적으로 대국화하다)', '돌돌핍인(咄咄逼人, 기세가 등등해져 남에게 압력을 가한다)'을 주창하면서, 중국은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더욱 강력한 도전장을 내밀었다.
2003년 보아오포럼에서 정비젠(鄭必堅) 중국 중앙당교 상무부장에 의해 처음 언급된 화평굴기는 이듬해 후진타오의 유럽 순방을 계기로 알려졌고, 한동안 중국의 외교전략은 군사적 위험 없는 평화적 성장의 온화한 입장을 유지하는 듯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가 주춤하면서 중국은 막대한 경제력을 무기화한 '힘의 외교'를 구사했다. 또 미국·일본과의 군사·영토분쟁 등 복잡한 국제관계에 직면하면서 중국은 돌돌핍인의 공격적인 자세로 선회했다. 특히 '인권운동가' 류샤오보(劉曉波)의 노벨평화상 수상,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등을 계기로 돌돌핍인 전략은 본격화됐다.
중국은 2010년 12월에 열린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대해 세계를 상대로 보이콧을 선언했고, 17개국 100여개 국제단체를 시상식에 불참시켰다. 아울러 센카쿠 열도의 영유권 분쟁 당시에는 희토류 수출 중단, 간첩혐의 일본인을 억류하는 등의 무차별 공세로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기도 했다.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업무보고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신형 국제관계와 인류운명공동체 구축을 핵심으로 한 '신(新)시대 중국 특색 대국 외교'를 언급하고, '중국의 꿈(中國夢)'을 32차례나 강조했다. 이와 함께 2050년에는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대국이 될 것을 시사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중국이 미국 대신 국제사회의 새로운 리더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며 시진핑 집권 2기의 외교정책이 기존 도광양회, 유소작위 기조에서 벗어난 '분발유위(奮發有爲, 떨쳐 일어나 해야 할 일을 하겠다)' 로 변화해 과거보다 더 공세적일 것으로 점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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