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한 대학에서 회사 방문을 왔다. 창업을 경험한 선배로서, 그리고 회사의 CEO로서의 이야기를 전하는 시간을 마치고 혹시나 질문이 있냐는 물음에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최근 창의적 융합 인재라고 해서 다양한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는 인재가 각광을 받고 있는데 이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대표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잠깐의 생각 끝에 필자는 우선 ‘전공’을 확실히 익히라는 대답을 해줬다. 융합 인재라고 해서 개발을 하는 디자이너, 마케팅을 하는 개발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멀티플레이가 가능한 융합 인재가 추앙받고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본인의 전공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대답을 하고 나니, 요 근래 많은 회사들이 무분별하게 융합형 회사를 지향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회사 본연의 전공 분야는 마스터하지 않은 채, 새로운 것에 눈을 돌려 성급한 투자를 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러한 성급한 투자는 기존 사업과의 연관성 없이 수익성과 성장률만을 보고 그려진 청사진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으며 그 결과는 '새드 엔딩'으로 끝나는 경우가 상당수다.
한때 국내 가구 시장을 대표하던 B 회사는 2008년까지 매출액 2천억 원을 기록하는 등 탄탄한 가구 명가로 입지를 다졌으나 2013년 알루미늄 관련 사업에 진출하는 등 무리한 신사업 투자로 부도 사태를 맞게 되었다. 또한 중견 제약사 D는 계열사를 통해 골프장 사업에 막대한 금액을 투자했다 회사 전체를 다른 대기업에 넘기게 되는 결과를 맞이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회사의 주 전공과 먼 분야에 대한 투자와 사업 확대는 매우 위험하다고 조언한다. 미국의 기업 전문가들은 인접 영역으로의 사업 확장이나 다각화의 성공률은 25% 정도로 보고 있으나, 비 관련 분야로의 사업 다각화 성공률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10% 이하로 보고 있다. 그러나 신사업을 찾아 헤매는 많은 회사들은 콜럼버스의 달걀을 들고 지금도 새로운 곳에 눈을 돌리고 있다.
물론 투자 역량을 갖춘 회사가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회사의 전공 분야를 튼튼히 하고 확실한 캐시카우를 갖추지 못한 채 무리한 사업 확장을 한다면 그 결말은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뿌리가 튼튼해야 가지가 무성하다는 ‘근고지영(根固枝榮·뿌리가 튼튼해야 가지가 무성하다)’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한 회사의 가지가 무성하려면 회사의 뿌리가, 회사의 전공 분야가 튼튼해야만 할 것이다. 강한 뿌리로 땅속 깊이 자리한 물과 양분을 빨아들일 수 있을 때, 큰 가지와 무성한 이파리를 가진 회사가 될 것이다.
무른 모래사장 위에 큰 건물을 지을 수 없듯, 단단한 곳에 깊게 내린 뿌리를 바탕으로 창의적 융합 인재가 자라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젊은 기업이 성장하고, 그리고 생동감 넘치는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길 기원한다.
(김형곤 지란지교소프트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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