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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흥순,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2017) 영화스틸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임흥순(48)은 한 단어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 힘든, 아니 그렇게 규정해선 안 되는 작가다. 그는 노동자로 살아 온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노동자 계층과 지역, 이주, 여성, 공동체 문제 등과 관련한 다큐멘터리 영화와 공공미술을 선보여 왔고, 수많은 개별작업과 공동작업 그리고 전시장, 극장, 생활현장을 오가며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해 왔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금천예술공장 입주작가로 머무르며 그 지역의 주부들('금천미세스')과 함께 미술, 영화, 투어, 퍼포먼스, 리서치 등 커뮤니티아트 프로그램을 진행해 온 것도 바로 임흥순이다.
그가 최근 3~4년간 노동문화상, 영평상, 무주산골영화제 무주관객상,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 등을 품에 안은 것은 분명 주목할 만한 일이지만, 새삼스럽진 않다. '사람'과 '삶'을 그처럼 농밀하고 맵짜게 다뤄 온 이가 드물기 때문이다.
이러한 임흥순이 국내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어 눈길을 끈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은 내년 4월 8일까지 서울관에서 'MMCA 현대차 시리즈 2017: 임흥순-우리를 갈라놓는 것들_믿음, 신념, 사랑, 배신, 증오, 공포, 유령'전을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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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흥순,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2017) 영화스틸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 전시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형성된 분단의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무의식 중에 유령처럼 깊게 스며들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어떻게 파괴해 나갔는지를 살펴본다. 한국현대사 속에서 희생되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다양한 미술형식과 영화로 담아 온 임흥순은 이번 전시에서 특히 한국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끌었지만 소외됐던 '여성' 노동자에 시선을 둔다.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을 수상한 '위로공단'도 사회적으로 소외된 약자들의 의미와 가치를 되돌아보게 해 국제 미술계에 작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전시장엔 4명의 할머니(정정화·김동일·고계연·이정숙)들의 삶이 인터뷰, 유품, 아카이브 등으로 체현됐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 흩뿌려진 그녀들의 부서진 시간을 '믿음, 공포, 신념, 배신, 사랑, 증오, 유령'이라는 상징언어를 통해 서사적 이미지로 복원한 것이다. 전시 부제목인 '유령'은 죽었으나 죽음을 인정받지 못하고 역사 서술의 진실과 거짓의 간극을 부유하는 수많은 민중(民衆)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바로 이 민중이 "도대체 우리를 갈라놓은 것들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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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흥순 작가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임흥순은 미술관을 산 자도 죽은 자도 공존하는 이계(異界)로 설정했다. 주 전시공간인 5전시실은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세계로 건너가기 위해 존재하는 일종의 경계이자 중간 지대이며, 수많은 죽음과 희생의 역사를 감내한 평범한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곳이다. 이러한 설정은 과거 군사시설이었던 서울관의 역사적 맥락을 개인의 상처, 역사의 상실과 상흔을 보듬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장소로 확장하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작가는 예술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이름 없는' 이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예술로서의 역사쓰기를 제안하는 것"이라며 "거대한 이념에 기생하며 분단을 지속시켰던 공포의 유령이 이를 통해 소멸되기를 기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내년 3월 장편영화로의 완성을 목표로 한다. 관람객들은 전시장을 찾을 때마다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변화하는 전시장을 만날 수 있고, 이 모든 과정은 영화에 집약적으로 담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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