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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자의 전성시대 포스터. 자료=네이버영화]
1975년 개봉한 '영자의 전성시대'는 과거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급변하던 시대의 산물이다. 당시 지방에 거주하던 젊은 여성들은 영화의 주인공인 영자(염복순 분)와 같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이렇다 할 기술도 연고도 없이 무작정 도시로 이주했다.
현실의 수많은 영자는 저임금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견디는 것 외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봉제 공장에서 잔업과 철야로 졸린 눈을 비비며 재봉틀을 돌리는 스무 살 안팎의 여공들은 한국 경제발전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희생한 젊음에는 아무런 대가가 없었다.
시대로부터 받은 유산은 유감스럽게도 유방암이었다. 우리나라 여성에게 두 번째로 많이 발생하는 암이 바로 유방암이다. 영자와 같은 시대를 보냈던 40~50대 여성들에게 유방암은 전체 환자(2015년 기준 14만1379명) 중 64.5%(9만1163명)를 차지할 정도로 유난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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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내양이 된 영자. 제공=한국영상자료원]
서구화된 식습관으로 초경이 빨라졌고 사회 진출로 결혼은 늦어졌으며 출산율이 줄고 모유보다 분유 수유가 대세로 자리 잡았던 첫 세대였던 탓이다. 개개인의 선택이 아니었다. 더 빨리 더 많이 일할 수 있도록 자본주의에 강요받은 선택이었다.
무리한 비약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 등 외국에선 나이가 많을수록, 특히 폐경 후 유방암 발생 빈도가 증가한다. 40대부터 50대 초반까지 유방암 환자가 많이 발생하는 것은 한국 만의 특징이다. 전문가들도 이런 현상은 70~80년대 압축성장의 부작용이라고 설명한다.
아직 건강한 영자 세대의 여성들도 안심할 수 없다. 50대 후반으로 60대로 나이를 먹으면 발병 가능성이 점점 커져서다. 유방암은 국가 암 등록 사업을 시작한 1999년 이후 매년 약 4%씩 늘었다. 단 한 차례도 줄어든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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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자의 전성시대 캡쳐. 제공=한국영상자료원]
상황이 이렇지만 고가의 치료비는 오롯이 영자의 몫이다. 진단부터 사망까지 총진료비가 2000만 원이 넘는 암은 유방암(2079만 원)밖에 없다. 여성 가구주의 절대 빈곤율(20.1%)이 남성 가구주의 절대 빈곤율(5.1%)보다 4배나 높다.
영화는 ‘창수(송재호 분)를 떠난 영자가 남편(이순재 분), 딸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현실은 계속된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살아갈 노년에 홀몸이 된 또 다른 영자를 상상해 보라. 그녀에게 유방암은 절망 그 자체일 것이다.
산업화의 기류에 휩쓸려 팔 하나를 빼앗기도 전성시대를 단 한 번도 향유하지 못한 영자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다. 우리는 그동안 영자의 뒷이야기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이제라도 현재의 모든 영자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방법에 관해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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