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양강(G2)인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전면전으로 번질 태세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15일(현지시간) 연간 500억 달러(약 55조 원)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하자 중국도 곧장 보복에 나섰다.
미국은 다음달 6일부터 340억 달러 규모, 818개 품목의 중국산 제품에 먼저 폭탄관세를 물리기로 했다. 중국이 '중국제조 2025'라는 이름 아래 육성하는 첨단산업 부문이 주요 표적이다.
중국도 미국의 발표가 있은 지 불과 몇 시간 만인 16일에 보복조치를 발표했다. 부과 규모나 방식 모두 받은 대로 돌려줬다. 중국도 다음달 6일부터 340억 달러어치, 659개 품목의 미국산 제품에 먼저 2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뒀으나 진정성이 얼마나 있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기업의 지식재산권 침해를 일삼는 중국을 국가안보위협으로 본다. 이번 조치는 지식재산권 침해에 대한 단죄일 뿐이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상품교역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적자를 줄이길 바란다. 또 일련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연간 1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도 추가 관세를 물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블룸버그는 17일 미국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중국 전문가인 스콧 캐네디 연구원의 말을 빌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 정말 협상하길 원하는지, 아니면 피를 흘리게 한 뒤 진지한 협상을 시작하려 하는지가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미·중 무역갈등의 전개구도를 둘러싼 4개의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1. 美·中 동시 양보
전면전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국과 중국이 모두 한 발짝 물러나 휴전하는 일이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달 20일 폭스뉴스 선데이 회견에서 '무역전쟁 중단', '폭탄관세 보류' 방침을 시사했다. 중국이 통상협상에서 미국산 제품 수입을 늘리기로 하면서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블룸버그는 이 때만 해도 단기 휴전이 가능해 보였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이 단호해지면서 기대하기 어려워졌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미국이 바라는 건 중국이 첨단기술을 다루는 방식을 구조적으로 바꾸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자국 기업을 상대로 첨단기술 이전을 강요하는 등 지식재산권 침해를 일삼는다고 비판했다.
2. 中 양보
미국에 최상의 시나리오는 이번 '치킨게임'에서 중국의 양보를 받아내는 일이다. 중국이 지식재산권 침해 문제를 해결하고 시장 개방 수위를 높여 미국산 제품 수입을 늘리면 미국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단호한 입장인 만큼 중국이 물러설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본다. 로드 헌터 베이커맥킨지 파트너는 "무역협상가로서 트럼프 대통령을 갖고 있다는 건 대단한 어드밴티지(장점)라며 그가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는 걸 모두가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중국 경제가 세계 무역 질서에 힘입어 성장했고, 무역전쟁이 성장둔화로 애를 먹으며 내수시장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는 중국의 경제운용에 지장을 줄 수 있는 만큼 중국이 전면전을 피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3. 美 양보
반면 트럼프 대통령이 한 수 물릴 가능성도 남아 있다. 부동산 사업가 출신으로 '협상의 기술'을 뽐내온 트럼프지만, 대통령이 된 뒤에는 그만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캐나다, 멕시코와 함께 진행 중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졌고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난 '세기의 핵담판'도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가 많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중국이 오히려 미국에 '할 테면 해 보라'는 식으로 맞서면 트럼프 대통령이 꼬리를 내릴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자칫 잘못하면 트럼프 자신이 취임 후 자랑해온 증시 랠리와 강력한 경제 성장세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은 미국산 농산물을 보복관세 표적으로 삼았는데, 미국에서 이를 생산하는 지역은 지난 대선 때 트럼프를 지지한 곳이다. 중국의 보복관세로 미국산 농산물 수출에 제동이 걸리면 오는 11월 중간선거나 2020년 대선 재선 가도에서 역풍을 맞기 쉽다.
4. 전면전
최악의 경우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전면전으로 번질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물러서기 어려운 이유로 맞설 수 있어서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를 의식해 대선 때처럼 대중 강경론을 고수하기 쉽다. 장기집권 토대를 마련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을 첨단기술 선도국가로 키우는 게 핵심 성장전략 과제 가운데 하나다. 두 정상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 장기적인 전면전이 불가피하다.
마이클 스마트 록크릭글로벌어드바이저 이사는 "무역전쟁은 작은 충돌에서 전면전까지 확대될 수 있다"며 "아직 거기(전면전)까지 이르지 않았지만 큰 충돌로 향해 가는 것 같아 두렵다. 출구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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