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호찌민시가 대규모 국영기업 형태의 ‘사이공그룹’ 설립을 공식적으로 검토하고 나섰다.
15일 베트남 현지 매체 베트남넷(Vietnamnet)에 따르면 베트남 호찌민시가 주변 도시인 빈즈엉(Binh Duong), 바리어붕따우(Ba Ria Vung Tau)와의 행정 통합 이후 열린 첫 번째 경제·사회 회의에서 이 같은 계획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응우옌반드억(Nguyen Van Duoc) 호찌민시 인민위원장(시장 격)은 기존의 베카멕스 아이디씨(Becamex IDC Corp)와 더불어 최소 두 개 이상의 대형 경제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이는 한국 대기업 집단, 이른바 재벌 모델을 벤치마킹해 국가 주도의 전략 산업 육성과 재정 건전성 확보를 동시에 꾀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제안이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만큼, 조직·지배구조 측면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재 호찌민시에는 총 46개의 국영기업을 운영 중이며, 이 가운데 22곳은 공익 서비스 분야에 집중돼 있다. 시 당국은 국영기업 통합을 통해 재원 효율화, 자본 활용도 제고, 예산 확대와 함께 민간 부문에 '혁신의 표준'을 제시할 방침이다.
베트남 RMIT대학교의 응우옌뚜언아인(Nguyen Tuan Anh) 박사는 “대규모 국영기업 모델은 인프라 투자와 핵심 산업 전략 수행에 유리하다”며 “국가가 필수 산업에 전략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적으로는 싱가포르 테마섹 홀딩스(Temasek Holdings), 말레이시아 카자나 나시오날 베르하드(Khazanah Nasional Berhad), 중국의 시노펙(Sinopec)과 CNPC 같은 대형 국영기업 사례가 자주 언급된다. 이들 기업은 투명한 지배구조와 명확한 투자 전략으로 성과를 거뒀지만, 한편으로는 실효성과 독립성 논란도 이어져 왔다.
베트남 호아센대학교의 뜨민티엔(Tu Minh Thien) 박사는 “과거 구 국영기업 구조개편 실패 사례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리더십과 투자 분야 선정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반도체나 첨단기술 같은 고위험·대규모 자본 분야는 국가가 전략적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다이르억(Vo Dai Luoc) 베트남 세계경제정치연구원 전 원장도 “국영기업 재편 자체는 필요하지만, 독점화 방지와 투명한 관리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뚜언 박사 역시 “호찌민시는 1980년대 도시 인프라 총공사 모델 실패 사례가 있는 만큼 재정·거버넌스 준비 없이는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논의가 현실화할 경우 구조조정 비용 부담, 비효율 국영기업 흡수, 행정화로 인한 운영 비용 증가 등의 리스크가 동반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과거 다수의 국영기업이 부실한 지배구조와 산업 간 협업 부재로 성과를 내지 못한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뚜언 박사는 “재무·관리 시스템을 투명하고 전문적으로 설계하고, 철저한 감시 체계를 갖춘다면 사이공그룹은 실현 가능한 모델이 될 수 있다”며 “명확한 재무 로드맵과 강력한 부패 방지 장치가 호찌민시가 목표로 하는 대형 경제 그룹 실현의 핵심 열쇠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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