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롭거나 복잡한 규제들은 아예 손도 대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다. 규제개혁이 자칫 ‘공염불’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열린 ‘제2차 규제혁신 점검회의’에서 준비과정이 부실하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내비쳤다.
정부 규제개혁은 대통령의 반려로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게 됐다. 회의 재개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무소식이다. 위기의식을 느낀 장관들은 혁신성장 회의 등을 통해 규제개혁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자며 의기투합까지 나섰다.
최근 이같은 일련의 배경은 그동안 공직사회가 현장감 없이 업무를 해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규제개혁은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면에 부상했다.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는 소식에 산업계는 반색했다.
하지만 정책 완성도가 부실하다보니 시작도 못하고 폐기되는 사례가 잦았다. 박근혜 정부에서 대표적 규제개혁 과제였던 서비스산업활성화 방안은 4년 동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사라졌다.
일각에서는 공무원들이 점차 현장을 멀리하면서 생긴 현상이라는 반응이다. 실제로 지난 정부에서 내놓은 규제개혁안을 보면 단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규제기요틴, 규제프리존 등 제목은 거창하지만 정작 산업계 이목을 끌 내용은 부실했다는 평가다.
당장 이슈를 쫒아가는 부분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등 결정권자 입맛에 맞는 정책 위주로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인식 자체가 시장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 정부에서 개최한 11번의 무역투자진흥회의는 다양한 규제개혁 방안이 도출됐다. 푸드트럭 활성화, 하우스맥주 허가 등도 당시 성과로 꼽힌다. 다만 공원 바비큐장 도입, 캠핑카 세제완화 등은 수요조사와 현실성 없는 정책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한 전직 공무원은 “최근 공직사회는 장관이나 청와대, 대통령 입맛에 맞춘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습관화 돼 있다”며 “자신의 의견이나 확고한 방향을 내지 못하는 공직사회 분위기 속에서 국민 눈높이에 맞춘 규제개혁이 이뤄지기는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문 정부가 규제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공무원 스스로 발로 뛰는 모습을 보여야한다는 얘기다. 국민 눈높이보다 결정권자 눈높이에 맞추려는 형식적 규제개혁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또 다른 전직 공무원은 “공직사회는 해외파들이 점령한지 오래다. 점차 엘리트화 돼가는 공직사회는 현장과 멀어지고 있다. 규제개혁이 더딘 가장 큰 이유인 셈”이라며 “이렇다보니 대통령은 규제완화를 주문하는데, 실무부처는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는 악순환은 반복되고 있다. 공무원 스스로 직접 현장을 둘러보고 과감한 제안과 경청이 필요한 시기”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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