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거침이 없었다. 코스피 5000 포인트를 앞둔 자신감도 있었겠지만, 부동산 환율 지방균형 발전 등 골칫거리 주제에서도 미래 방향을 뚜렷하게 제시했다. 제법 고통스러운 질문이 될 것이라고 염려하던 당국자들도 조금 놀랐다는 후일담이다. 부동산, 환율은 특히 둘 다 가격 변수이고 단기간에 근본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문제들을 일거에 제압하는 듯한 기자회견 내용은 두고두고 되새겨 볼 만하다.
환율 집값 변수들은 시장에 주는 시그널이 중요하다. 정책담당자의 이 시그널이 시장 참가자들의 심리를 건드리고 공감을 얻어내기 시작하면 곧바로 ‘메시지 효과’가 나타난다. 중앙은행이 흔히 쓰는 시장 관련 발언의 의미와 흡사하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 기자회견 발언이 정확히 이 변수들의 향후 방향과 정부 의지를 공표하는 시그널링에 맞춰져 있었다.
이 대통령은 달러 강세 기조로 인한 원화 약세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면서도 시장 안정에 대한 전망을 조심스레 내비쳤다. 3월쯤부터 안정될 것이라는 관계 부처 보고를 받았다는 식으로 말했다. 해외로부터 들어오는 배당 수익 등 달러 공급이 늘어날 예정이고, 이로 인해 환율 변동도 상당 폭 제한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시장에선 놀라운 반응이 나타났다. 새해 들어 다시 고공행진을 하던 환율에 급제동이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최근 재정경제부는 국제금융 라인을 쇄신했다. 더 이상의 불안감 없이 이 시그널링을 충실히 이행하라는 청와대의 강한 의지를 시장에 던진 것이다.
부동산에 대해서는 더욱 조심스런 표현을 썼지만, 방향은 더 분명해 보였다. 언뜻 보기엔 이 대통령이 요즘 들어 연일 부동산 맹공을 퍼붓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당시 기자회견 발언을 음미해보면 이미 전쟁 선포의 기운이 그때부터 담겨 있었다. 대표적으로 “거주하지도 않는데 보유만 오래 한다고 해서 세금을 감면해주는 게 말이 되느냐”는 발언이다. 이 지적이 처음엔 그리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다주택자 중과세 유예를 더 이상 연장하지 않겠다는 이 대통령의 뜻이 표출된 뒤부터 상황이 급박해졌다. 선거를 앞두고 그리 쉽게 대통령 뜻대로 되지 않으리란 전망과 이 대통령의 정치 행정 스타일로 보아 반드시 그리 할 것이라는 전망이 뒤섞였다. 시장에 급매물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오는가 하면 자칫 전월세 임대료만 올리고 말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나왔다. 이 대통령은 하루가 멀다 하고 부동산 전쟁을 향해 새로운 메시지를 내고 있다. 청와대를 포함한 정부 관계자들의 다주택 처리 문제를 독려하는가 하면 이제는 ‘똘똘한 한 채’도 비거주용이라면 잘못된 선택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승기를 잡은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의 머리와 마음속에 그림이 어디까지 그려져 있는지 알 길은 없다. 다만 ‘보유’에서 ‘거주’로 원칙을 바꾸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이 짙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그 의미가 대단히 크다. 어쩌면 ‘경자유전’과 비슷한 개념으로 ‘주자유택(거주하는 사람만이 주택을 소유할 수 있다는 원칙)’을 기본원칙으로 천명한 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언뜻 싱가포르 모델처럼 비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꽤 오래 전부터 거론되긴 했다. 다만 한국 부동산 시장에 어울리지 않고 과격하다는 이유로 그동안 터부 시 됐었다. 그러나 이제는 인구 구조나 수도권 집중 면에서 본격 논의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국민의 80% 정도가 정부가 공급하는 주택에 ‘거주’하고 있고, 2채 이상의 주택을 구입할 경우 주택 가격의 20% 내지 60%를 취득세로 내야 한다. 부동산 투자의 기대수익률이 거의 없도록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델을 국내에 도입할 경우, 입법이 필요하다. 입법 취지는 간단하다. 현재의 부동산 가격이 무주택자의 행복추구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므로 공익을 위해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방균형 발전을 위한 5극3특 정책 추진도 마찬가지다. 대대적인 정책 홍보와 함께 정부재정 지출을 지방에 집중해 몰아주겠다는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10대 그룹 총수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지방 발전에 민간이 동참해달라는 당부를 강하게 전했다. 가격 변수가 아닌 테마이기에 메시지 효과로 인해 당장 변화를 감지할 부분은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게 상당한 파급력이 시장에선 느껴지고 있을 듯하다.
그러나 시그널링과 메시지 효과는 어쩌면 여기가 한계인지 모른다. 이 효과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그 저변의 펀더멘털이 개선되고 변화한다는 믿음을 시장에 주는 것은 물론이고 실제 그에 상응한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정부가 발표한 2026년 경제성장전략에 따르면 네 가지 뼈대가 골격을 형성하고 있다. 거시경제 적극 관리, 잠재성장률 반등, 국민균형성장 및 양극화 극복, 대도약 기반 강화 등이다. 어느 것 하나 립 서비스나 메시지 효과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코스피 5000 이후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후속대책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방향은 크게 두 가지이다. 증시 자체 처방으로 PBR(주가순자산비율) 개선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한편 경제 전체의 펀더멘털을 강화하기 위한 인프라 개선 및 사회적 자본을 확충하는 일이다. 예컨대 경제 선진화와 ‘포용적 혁신 성장’을 향한 대대적인 프로파간다의 일환으로 생산성 10% 올리기, 노사 대타협 등을 선언하고 추진하는 것이다. 이는 환율 문제를 극복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증시 자체 처방은 지금 바로 시작할 수 있다. 아직 PBR이 낮은 기업들이 너무 많다. 증시에서 기업 차별화(좀비 종목 증시 퇴출 포함)를 통해 더 많은 기업들이 증시 선진화에 동참하도록 해야 한다. 상법 개정이 큰 칼이었다면, 이제 한국거래소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이 작은 칼로 압박해야 한다.
경제 펀더멘털 강화에는 인프라 개선, R&D, 벤처 혁신, 노사 대타협 등 다양한 팩터(要因)가 영향을 미치겠지만, 시장이 당장 관심을 두는 반도체 AI 관련 전력 인프라 확충도 중요하다. 이와 함께 검찰 개혁을 포함해 규제개혁, 금융개혁 등 각종 개혁 과제들도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 강화와 사회적 자본 확충 차원에서 전열을 정비해 국민적 캠페인과 프로파간다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국제경제학과 및 동 대학원 ▷미국 미주리대 경제학 박사 ▷매경TV·매경출판 대표, 매일경제신문 워싱턴 특파원, 논설위원 등 ▷서울대 경제학부 객원교수 ▷연우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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