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던 거대한 용,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의 주도 하에 시장경제의 길로 나선 이후 수십년 만에 세계 경제의 양대 축으로 우뚝섰다. 1978년 12월 18일부터 22일까지 열린 중국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11기3중전회)에서 '개혁·개방의 총설계자' 덩샤오핑이 실권을 잡으면서 중국은 새로운 시대에 진입하게 된다. 이 회의 직전 개최된 중앙공작회의에서 행한 16절지 3장 400자 분량의 그의 연설은 향후 중국이 나아갈 길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었다. 그가 내세운 주장의 핵심은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의 사상적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고 사고(思考)를 개방해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자세로 일치단결, 앞으로 전진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그의 연설문을 찾아보았더니 아래의 문장이 눈길을 끈다.
"당내의 인민 군중들 가운데 긍정적으로 의식을 개방하고, 긍정적으로 문제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사업에 유리합니다. 혁명을 하든, 건설을 하든 용감하게 사고하고, 용감하게 탐색하며, 용감하게 창조하는 맹장들이 었어야 합니다. 이런 맹장들이 없으면 빈궁낙후한 현상에서 탈출할 수 없으며, 국제 선진 수준을 따라잡을 수도 없고, 언급할 수도 없게 됩니다."
당시 중국의 경제는 문화대혁명의 대혼란을 거친 후 세계와의 격차가 커지고 있었다. 빈곤 인구는 2억명이 넘었다. 주변에는 아시아의 용 4마리(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가 나타났다. 1976년 마오쩌둥 사망 이후 권력에 복귀한 덩샤오핑은 중국이 자유로운 사상으로 경제 탄력을 높이지 않으면 잠든 중국을 영원히 깨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사상과 사고의 틀을 깨야만 했다. "부자가 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다"라는 그의 구호는 중국인들의 기업 창업을 자극했다.
덩샤오핑은 외국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동남부 연안과 장강 유역에 경제특구를 설치했다. 세제혜택과 규제완화를 제공함은 물론 관료적 형식주의도 과감히 배제했다. 경제특구는 처음에는 좀 주츰거렸지만, 덩샤오핑이 1992년 남방 지역을 순회하면서 개혁·개방을 촉구한 이른바 남순강화(南巡講話)를 계기로 새로운 단계로 들어선다. 특히 홍콩이 저임금 효과를 이용하기 위해 공장을 중국으로 옮기기 시작한 1980년대 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초기 외국 투자는 대부분 해외 화교들로부터 나왔다고 한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고국을 떠난 화교들의 지원을 거부했던 마오쩌둥과 달리 덩샤오핑은 홍콩,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의 화교 자금을 적극 유치했다. 1990년대에는 대만 기업가들의 대(對)중국 투자와 무역도 장려했다. 이들의 자본, 경영기술과 중국문화에 대한 친숙성은 중국의 동남아 연해지역을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인 지대로 탈바꿈시켰다.
필자는 지난달 하순 중국 대사관 초청으로 국내 언론인, 학자들과 베이징·상하이·항저우·선전 등 중국 개혁·개방의 현장을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마지막 일정으로 들른 광둥성 선전의 롄화산(連化山) 공원에는 '작은 거인' 덩샤오핑 동상이 세워져 있다. 방금이라도 뚜벅뚜벅 걸어갈 것 같은 모습이다. 작은 어촌에 불과하던 선전은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에 의해 가장 먼저 문을 연 곳으로, 지금은 중국의 부를 상징하는 곳이다. 텐센트·화웨이·비야디 등 중국의 내로라하는 하이테크 업체들이 모두 여기에 모여 있다. 중국의 핵심 기술이 집약된 최첨단 스마트 시티다. 뤄후(羅湖)천을 건너면 바로 홍콩이다. 남순강화 당시 9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롄화산에 오른 덩샤오핑은 홍콩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제껏 걸어온 길을 돌아가지 않는다.", "삶은 지나온 길을 되돌아갈 수 없는 등산과 같다." 공원에는 무덥고 습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이 나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홍콩을 통해 중국의 개방을 이끈 덩샤오핑이 없었다면 지금의 중국도 없었을 것이다.
롄화산 방문 전에 들른 화웨이와 텐센트 본사의 건물은 세계 최대 혁신성장의 기지다. 두 기업은 중국 개혁·개방 과정에서 배출된 런정페이(任正非)와 마화텅(馬化騰)이라는 걸출한 기업가들이 이끌고 있다. 이들은 중국의 '빌 게이츠'라고 불리는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중국 최대 검색포털에서 인공지능(AI) 선두기업으로 도약 중인 바이두의 리옌훙(李彦宏) 회장과 함께 4차 산업혁명 시대 중국의 미래를 이끌고 있다. 덩샤오핑이 1978년 중앙공작회의에서 언급한 '용감하게 창조하는 맹장들'이다.
여의도 면적의 광활한 캠퍼스에 40여동의 건물이 위치한 화웨이 본사를 들렀을 때, 런정페이의 경영철학과 인사제도를 소개한 책자인 'dedication(헌신)'을 방문 기념으로 받았다. 1987년 직원 5명이던 스타트업 기업을 18만명의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으로 키워낸 그는 회사 간부와 직원들에게 늑대와 같은 예민한 후각으로 무장하고 '돌격 앞으로'를 계속해서 주문한다. 상시 구조조정으로 성과가 낮은 직원은 도태된다. 하지만 종업원 주주제를 도입해 직원들의 성과에 대한 보상은 파격적이다. 오래전부터 360도 평가 등 서구적 인사 시스템을 도입해 역동적이고 투명한 기업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심지어 모든 간부들에 대한 업무평가표까지 회사 직원들에게 공개되기도 한다.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가장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중국은 19세기 아편전쟁 당시의 허약한 모습의 용이 아니다. 런정페이 같은 열정적인 리더십을 가진 맹장들로 인해 이젠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한국에도 이런 용맹한 장수들이 필요하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