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쉽게 풀어낼 수 없는 난제를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에 비유한다. 고대 프리기아 왕국의 수도 고르디움에 존재했다고 전해지는 이 매듭은 워낙 복잡하게 꼬여 있어 매듭을 푸는 자가 소아시아 지방을 정복한다는 예언이 있었고, 알렉산더 대왕이 단칼에 잘라 버리는 방식으로 매듭을 풀어 대제국을 건설했다는 전설은 잘 알려진 얘기다.
그간 업역규제 개선은 기업 규모, 업종별 이해관계가 대립되고 셈법이 달라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풀어내기가 매우 어려운 과제였다. 그러나 건설산업 생산구조의 가장 밑바닥을 떠받치는 업역규제의 매듭을 풀지 못하면 글로벌 경쟁력 강화는 메아리 없는 구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성벽 너머의 시장 개척에 둔감한 기업이라면, 생산성을 향상하고 시공품질을 높일 동기도 낮게 마련이다. 결국 건설산업 혁신은 창의적 기업가 정신을 가로막는 낡은 업역규제의 성벽을 허물어 종합과 전문이 서로의 시장에 자유롭게 진출할 수 있도록 하는 데서 출발한다.
작년 4월 노·사·정이 함께 참여하는 건설산업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켜 공론화에 착수한 후 수십 차례의 논의를 가졌다. 내 시장은 단단히 지키고 남의 시장은 더 넓게 열고자 하는 양 업계의 인지상정을 극복하기 위해 긴 조정의 시간도 필요했다. 이러한 노력들이 더해져 11월 7일, 업역규제 폐지를 골자로 업종체계, 건설업 등록기준을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건설산업 생산구조 혁신 로드맵'을 내놓을 수 있었다.
상호시장 진출요건, 시장 개방시기, 경쟁에 취약한 영세기업 보호조치 등 하나하나의 매듭을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차근차근 풀어낸 성과다. 이러한 성과가 원만한 입법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도 '노·사·정 선언'이라는 의미있는 절차를 통해 합의에 공신력이 부여되고 상호 신뢰가 담보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굵직한 정책방향은 물론, 세세한 실천계획까지 망라한 노·사·정 선언문은 건설산업의 재도약을 약속하는 '권리장전'이라 불러도 좋겠다.
지난해 건설산업은 40여년을 지켜온 게임의 룰을 통째로 바꾸는 거대한 혁신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당장의 유·불리를 떠나 산업의 미래를 내다보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동참해준 모든 건설인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정부도 건설산업이 혁신의 성과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성큼 앞서나갈 수 있도록 다각도의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건설산업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고, 국내외에서 좁아지는 시장으로 안팎이 위기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노·사·정이 하나가 되어 해법을 모색한다면 못 오를 산이 없고 못 건널 강이 없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우리 건설산업을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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