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楓漁火對愁眠(강풍어화대수면)
姑蘇城外寒山寺(고소성외한산사)
夜半鐘聲到客船(야반종성도객선)
달은 지고 까마귀 울고 하늘 가득 서리 내리는데
강가의 단풍과 고깃배 등불이 어수선한 잠을 설치게 하네
고소성 밖에 있는 절 한산사
장계의 '풍교야박(풍교 다리밑 배위에서의 하룻밤)
당나라 무명시인 장계(張繼)는, 이 시 한편으로 일약 역사에 남는 거물이 됐다. 57세에 과거에 세번째 낙방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사내는 풍교 다리밑 선상에서 심란한 잠을 청한다. 달과 까마귀와 허공을 채운 서리기운은 음산함의 극치인데, 강물에 얼룩이는 단풍들의 빛과 고깃배들이 켜놓은 등불빛까지 '빛공해' 또한 여간하지 않다.
고향에 돌아가 다시 조진 시험에 대해 해명을 할 일이 끔찍한데 출렁이는 배 위에서 무슨 잠이 오겠는가. 그래도 기어이 눈은 붙이겠다고 돌아눕는데, 성밖의 한산사에서 더엉덩 무슨 심판의 벨처럼 들려오는 심란 200%의 종소리.
인생에 좋은 일만 있고 순탄한 상황만 있다면 이 시가 사람들을 붙잡진 않았을 것이다. 저 처절한 하룻밤의 귀신 사나운 조명과 음향들은, 수많은 비슷한 삶들을 뒤흔들었다.
지금도 중국 상하이에서 고속철로 30분쯤 걸리는 소주에서 한산사는 관광 단골코스다. 순전히 저 장계의 풍교야박 때문이다. 수많은 명필이 이 시를 필사해놓고 갔으며, 시 한편은 작은 절에 관광객을 북적이게 했다. 1300년쯤 전에 인생 루저가 딱 하나 남겨놓은 28자의 시가 이렇게 후세에 와서 대박을 칠 줄은 아마 하느님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일본사람들이 들끓는데 그 이유는, 이 시가 고급스럽게도 학교 교과서에 등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름 해양국가인지라, 배에서 '노숙'하는 맛을 알아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저 시가 지닌 인생 바닥의 스산한 기운이 삶의 양상을 핍진한다고 여겨서였을까.
이 시를 읽노라면, 뭔지 모르게 슬픔과 우울 혹은 절망 같은 부정적인 감정 또한 인간을 깊이 힐링하는 것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참, 우리나라도 풍교야박의 인연이 좀 있다. 조선 효종 때 일본에 파견된 조선통신사 종사관 남용익. 이조판서까지 지낸 이분은 어느 날 임진강에 유람 왔다가 그 풍경에 반해 8편의 시를 짓는다. 그게 '임진팔경'이란 꽤 유명한 시다. 그중에 제8경이 진사명종(津寺鳴鍾, 진두사의 종소리)이다.
津頭寺隔白雲層(진두사격백운층)
半夜鳴鍾有老僧(반야명종유로승)
不是姑蘇城外泊(불시고소성외박)
寒天落月又漁燈 (한천낙월우어등)
진두사(나루터절) 위에 흰 구름이 1층 더 있구나
밤중에 종소리 우는 걸 보니 늙은 스님이 있구나
고소성 밖에 숙박하는 것도 아닌데
겨울 하늘과 지는 달, 그리고 어등을 보네
장계의 '풍교야박'이 조선시대에도 유행가처럼 불리던 시였음에 틀림없다. 남용익은 그 익숙한 스토리를 임진강의 시에다 집어넣으며 다소 생경할 수도 있는 진두사 종소리를 그 반열로 끌어올린 것이다. 풍교 다리밑에서 비록 선상 외박하는 것은 아닐지언정 겨울하늘에 지는 달, 번쩍이는 고깃배 등불은 딱 그 버전 아닌가. 시는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돌고돌며, 하나의 감성을 현장과 현실 속에서 생생하게 변주하는 놀라운 인간기물(奇物)이다.
이빈섬(시인,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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