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교의 페널티] "박성현 모자 '카지노 로고' 나만 불편한가"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서민교 기자
입력 2019-03-12 00:01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필리핀 '솔레어 리조트 앤 카지노'와 2년 70억 후원 계약

  • 국내 골프 사상 최고 대우에도 도박업체 홍보에 거부감

  • 해외서도 품위 고려 기피…"레저 기업" 해명에도 찜찜


최근 프로야구 LG 트윈스 소속 선수들이 전지훈련지인 호주 시드니에서 휴식일 카지노에 놀러 갔다는 사실이 알려져 발칵 뒤집혔다. 거액의 베팅은 아니었다. 최대 500호주달러(약 40만원)로 즐긴 오락성에 그친 도박이었다. 하지만 카지노에 들락거린 그들을 향한 시선은 냉랭했다. 결국 이들은 KBO로부터 엄중경고 징계를 받았다. 클린베이스볼 정신에 위배된 품위손상행위가 이유였다. 이후 일본으로 옮겨진 스프링캠프 휴식일 풍속도가 달라졌다. 프로야구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즐겨 찾던 ‘파친코 문화’가 사라졌다. 일부 구단 직원들까지도 출입 금지령이 떨어졌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한 박성현이 우승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사진=신화 연합뉴스 제공]


이번 ‘시드니 카지노 사건’이 벌어지기 나흘 전, 한국 여자골프의 역사를 바꾼 초대형 계약이 성사됐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활약하고 있는 박성현이 2년간 최대 70억원(연 35억원 추정) 규모의 메인스폰서 계약을 했다. 박세리가 2002년 CJ와 맺은 5년 최대 150억원(연 30억원)을 넘는 국내 골프 사상 역대 최고 대우다.

계약 규모도 대단하지만, 또 하나 놀라운 건 후원을 자청하고 나선 기업이다. 후원사가 국내가 아닌 필리핀 기업 솔레어 리조트 앤 카지노라는 것.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필리핀 기업에서 워낙 큰 액수를 베팅해 사실상 국내 기업들은 두 손을 다 들고 지갑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박성현은 지난 2년간 하나금융그룹과 연 15~20억원 규모의 후원을 받았다.

솔레어 리조트 앤 카지노는 필리핀계 ‘억만장자’ 엔리케 라존 회장이 대표이사로 있는 블룸베리 리조트 앤 호텔의 산하 기업이다. 라존 회장은 마닐라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항만운영사 ICTSI(인터내셔널 컨테이너 터미널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는 큰손이다. 소문난 ‘골프광’인 라존 회장은 필리핀여자프로골프투어(LPGT) 대회를 후원하고 있고, 평소 박성현의 팬이었던 인연으로 메인스폰서 계약까지 급물살을 탔다.

국내 최고의 선수가 외국 기업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거액의 후원을 받는 건 박수치고 반길 일이다. 문제는 메인스폰서의 명칭에 붙은 ‘카지노’다. 박성현의 모자 정면에는 ‘솔레어’ 로고가, 좌측에는 ‘리조트 앤 카지노’가 새겨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간판선수가 해외 카지노를 운영하는 기업의 로고를 달고 뛰는 것에 대한 불편한 시각이 있다.

카지노가 합법인 미국에서도 LPGA 투어나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선수들이 카지노 기업의 로고를 달고 필드를 누비는 사례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그동안 도박 및 카지노, 주류 업체 등의 후원을 금기시했기 때문이다. 국내 선수 가운데 카지노 기업의 후원을 받는 것도 프로스포츠 종목을 막론하고 박성현이 이례적이다.

박성현이 솔레어와 계약을 맺은 이후 지난달 28일 PGA 투어는 카지노 업체의 공식 마케팅 파트너 참여를 허용했다. 이에 따라 PGA 투어 선수들은 도박 및 카지노 업체의 개별 후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다만 스포츠 베팅을 주업무로 하는 업체의 후원 계약은 금지된다. 하지만 PGA 투어 유명 선수들은 아직도 카지노 기업의 후원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골퍼의 품위와 명예, 책임감 등이 이유다.
 

[박성현(왼쪽)과 블룸베리 리조트 앤 호텔 엔리케 라존 회장. 사진=박성현 인스타그램 캡처]


박성현의 필리핀 카지노 기업 후원과 관련해서도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미국 내에서도 거부감이 있는 카지노 기업은 국내 정서상 아직 환영받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국내 프로스포츠 구단이나 유명 연예인들이 대부업체 스폰서를 받거나 광고를 촬영한 뒤 큰 비난을 받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LPGA 투어 3년차인 박성현에게 큰 기대를 품고 있는 팬들의 시선이 나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성현의 메인스폰서 계약을 추진한 매니지먼트사 세마스포츠마케팅 측은 “박성현이 카지노 업체와 계약을 한 것이 아닌 레저문화기업인 블룸베리 리조트 앤 호텔의 자회사 홍보를 위한 로고를 달게 된 것”이라고 경계하며 “후원 계약을 맺기 전 LPGA 투어에 자문을 구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성현의 모자에는 또렷하게 ‘카지노’라는 명칭이 새겨 있고, 블룸베리 리조트는 솔레어 외에도 제주도에 ‘선 호텔 앤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박성현의 후원 계약 이유가 국내 계열사 홍보를 위한 비즈니스의 일환”이라면서 “왜 국내에서는 카지노 기업의 후원이 이슈가 되지 않는지 의문”이라고 귀띔했다.

박성현은 솔레어와 계약 당시 “솔레어는 회사를 통해 처음 알게 됐는데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어떤 곳인가 찾아 봤다. 정말 큰 리조트와 카지노가 있는 회사였다”라면서 “미국에도 그런 리조트 앤 카지노가 많이 있어서 거부감은 없었고, 감사의 마음이 더 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세마스포츠마케팅 측은 “박성현이 그런 쪽(후원사)에는 순수하다고 해야 할 정도로 관심이 별로 없다”고 보탰다.

박성현은 새 후원사를 만난 뒤 곧바로 LPGA 투어 시즌 첫 승을 거두며 세계랭킹 1위에 복귀했다. 이후 후원사 초청으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보다 수준이 크게 낮은 필리핀 투어 대회에 처음 참가해 헬리콥터를 타고 이동하고 최고급 객실에 묵는 등 초호화 대접을 받으며 우승까지 차지했다. 박성현은 필리핀 대회 현장에서 라존 회장과 함께 찍은 사진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국내 팬들도 박성현도 잘 알지 못했던 솔레어 리조트 앤 카지노는 거액을 투자한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국내 팬들과 업계의 시선은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