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 장흥의 분위기는 더없이 한가롭고 공기는 무척 싱그럽다.
하나둘씩 붉은 꽃망울을 수줍게 움틔운 동백꽃이 마음을 홀리고, 초록빛 가득한 동백나무는 햇살을 머금어 반짝반짝 윤기가 흐른다. 답답한 빌딩 숲, 빡빡한 일상에서 벗어나 붉게 피어난 동백을 지긋이 바라보며 일상에 쉼표를 찍어본다.
◆2만여그루 동백나무가 빼곡하게 ‘천관산 동백숲’
정상 능선이 기암괴석으로 뒤덮인 천관산(해발 723m) 북측 자락 뒷산에 국내 최대의 동백 숲이 있다니…
동백을 만나기 위해 걸음을 재촉한다.
관산읍에서 천관산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 오르니, 마침내 끝없이 펼쳐진 동백숲이 눈앞에 등장한다.
옷깃이 절로 여며질 만큼 바람은 꽤 쌀쌀하지만 붉은 꽃잎을 피워내는 동백나무의 자태는 고고하기 짝이 없다.
수령 60~80년에 달하는 동백나무 2만여 그루가 계곡을 중심으로 양 경사면에 퍼져 있다.
전망대에서 굽어봐도 빼곡하게 들어찬 동백나무.
도로에서 계곡까지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도 한 줄기 빛조차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울창함이 가득하다. 산책로가 조성되긴 했지만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이곳은 마치 원시림 같은 느낌이다.
가느다란 빛줄기가 비춰주는 초록빛 동백나무 잎사귀는 보석이 박힌 듯 반짝인다.
동백을 찾아 내려앉은 동박새의 울음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곳의 동백나무는 대대로 가난한 산골마을 주민을 먹여 살린 고마운 존재였단다. 아름드리 동백은 훌륭한 숯 재료가 돼주기도 했다. 드넓은 동백 숲엔 지금도 7개의 숯가마 터가 남아 있다.
2만여그루의 동백나무에 꽃이 모두 피어나기까지는 아직은 이른 시기다. 4월 초순이 지나면 붉은 동백꽃잎과 초록의 동백나무가 뒤엉키고 하나, 둘 뚝뚝 떨어진 꽃들이 수놓은 길을 만날 수 있으리라.
◆붉은 융단에 마음 뺏기다…장흥은 지금 ‘레드홀릭'
그렇게 도착한 묵촌마을 동백 숲. 들은 대로 과연 절정이다. 붉은 잎을 피워낸 동백꽃은 나무에 가득 매달렸고 나무에서 후두둑 떨어진 꽃송이는 그대로 붉은 융단이 되어 길게 깔렸다. 처연한 듯도, 초연한 듯도 보이는 동백꽃이다.
지금은 수령 250~300년 된 동백나무 140여그루만이 남아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붉은 꽃잎이 5장 달리는 토종 동백이 화려하진 않지만, 마치 한복을 차려입은 여인네의 고운 자태처럼 단아한 매력을 뽐낸다.
가지도 바닥도 온통 붉게 물들어있는 덕에 많은 이가 사진 촬영을 위해 묵촌마을을 다투어 찾는다.
묵촌마을은 장흥 동학농민운동을 주도한 이방언(1838~1895)이 태어난 곳이다. 송기숙의 대하소설 ‘녹두장군’의 무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동백림 입구에 이방언을 기리는 비석과 동학농민운동을 다룬 소설가 송기숙의 《녹두장군》 관련 안내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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