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익 칼럼] 12번째 홀에서 타이거 우즈와 AI를 구분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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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익 IT과학부 부장
입력 2019-04-16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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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9일. AI가 인간을 이겼다. 구글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첫 대국에서 186수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인간은 경악했다. 자신이 만든 기계에 졌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누가 이기던 결국 인간의 승리란 말로는 자위가 안됐다. AI가 몰고올 미래가 두렵기도 했다.

알파고는 수퍼컴퓨터다. 수만가지 기보, 즉 빅데이터로 바둑을 배웠다. 정책망과 가치망이란 알고리즘으로 이기는 수를 예측했다. 상대가 돌을 놓으면 정책망은 이를 기반으로 10의 170제곱 가지 경우의 수를 예측한다. 가치망이 이 중 이기는 경우를 가려낸다. 반 집 이상 집이 더 생기는 경우의 수만을 분류하는 것이다. 이세돌과의 첫 대국에선 이같은 작업이 186번 반복된 것이다. 알고리즘 이외 다른 요소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지난 15일(미국 시간) 골프계에 대사건이 일어났다. 타이거 우즈가 2019 마스터즈에서 우승, 그린 재킷을 입었다. 그가 마스터즈 그린 재킷을 걸친 건 2005년 후 14년만이다.

이 날 타이거 우즈는 알파고 같았다. 타이거 우즈는 스물두번 마스터즈 대회에 출전했다. 18홀 코스 구석구석에 대한 빅데이터가 있는 셈이다.

승부처는 12번재 홀이었다. 158야드로 세팅된 파3였다. 강력한 우승후보 몰리나리는 핀을 직접 공략했다. 맞바람에 공이 워터 헤저드에 빠졌다.

상대가 돌을 놓은 것이다. 타이거 우즈는 이를 기반으로 이기는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핀을 직접 공략하는 게 타수를 줄이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었을 것이다. 버디로 이 홀을 마무리 할 경우 쉽게 승부를 역전시킬 수 있었다.

우즈는 홀 왼쪽 중앙을 공략했다. 홀과의 거리가 멀어 원 퍼트 마무리는 어려울 수 있는 선택이다. 상대가 보기로 끝낼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파로 끝낼 경우 한타 차이를 줄일 수 있었다.

우즈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앞조에서 켑카의 공이 물에 빠지는 것을 봤다. 나보다 파워가 훨씬 강한 켑카가 공을 물에 빠뜨렸다면 나도 위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오랜세월 다양한 조건에서 플레이한 경험이 쌓이면서 내 머릿속에는 이곳에 대한 도서관이 들어섰다. 달라지는 코스 컨디션에 어떻게 적응할지 알게 됐다”고 했다.

타이거 우즈는 알파고의 정책망이 상대 선수의 착점을 보고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하듯 몰리나리의 플레이 결과를 놓고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가치망이 이 중 이기는 수를 골라낸 것처럼 홀 왼쪽 중앙을 공략하는 수를 골랐다. 그리곤 과감하게 실행해 성공시켰다.

누구나 이처럼 플레이 하지 않냐고? 몰리나리는 홀을 직접 공략했다. 앞조 켑카의 플레이는 우즈만 본 건 아닐 것이다. 그는 결국 공을 물에 빠뜨렸다. 정책망과 가치망 중 어떤 것에 문제가 있었을까. 주말 골퍼라면 대부분 안다. ‘남자는 가오(체면)지’란 말을 뿌리치지 못하고 얼마나 많은 타수를 잃었는 지 말이다.

몰리나리도 홀을 직접 공략하는 것과, 홀 중앙을 공략해 최악의 경우 투 퍼트로 마무리하는 방안 등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했을 것이다. 경우의 수를 생각하는 정책망 기능엔 둘 사이에 별 차이가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중 어떤 수를 택하느냐, 즉 가치망의 기능에선 둘이 큰 차이를 보였다.

우즈는 철저하게 승리하는 길을 택했다. 알파고가 알고리즘을 수행하는 데 충실한 것처럼 우즈는 일체의 스타일을 배제했다. 그리고 이겼다. 결과적으로 더 창의적인 스타일을 만들었다.  

AI가 발전을 거듭하면서 인간의 영역을 점점 침범해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여러 경우의 수 중에 상대적으로 패할 가능성이 높은 수를 택하는 것은 훗날 AI와 인간을 구분하는 유용한 방법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 지난 15일 오거스타 내셔널 12번째 홀에서는 AI와 타이거 우즈를 구분할 마땅한 기준을 찾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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