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33조원의 과감한 투자를 바탕으로 2030년까지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글로벌 1위를 달성하겠단 목표를 내놨다.
현재 세계 1위인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뿐 아니라 비메모리 시장까지 장악해 종합 반도체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다.
지난 7일 방문한 삼성전자 경기 화성·기흥 사업장은 이 부회장이 그리는 '세계 1위' 목표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모습이었다.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한참 가다보면 '삼성전자(기흥사업장)' 안내 표지판이 나온다. 표시를 따라 오른쪽으로 빠지면 기흥사업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기흥에 들어서자마자 삼성전자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길 이름 자체가 '삼성로'이며, 사거리는 '삼성반도체사거리'다.
기흥사업장은 삼성전자 반도체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이병철 선대 회장은 1983년 초고밀도집적회로(VLSI) 사업 투자를 결정했다. 반도체 설계부터 개발, 생산 등 전반에 걸쳐 초석을 깐 셈이다. 이는 '도쿄 선언'으로 불린다.
지금이야 반도체가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대들보 가운데 하나지만 당시만 해도 리스크가 상당했다. 1983년 당시엔 반도체 D램이 없어 못 팔 정도로 호황이었으나 1985년부터 일본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반도체 가격이 급락했다. 당시 세계 반도체 산업은 미국과 일본이 양분하고 있는 구도였다.
삼성전자는 후발주자로 뒤늦게 뛰어든 셈이다. 때문에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반대가 상당했다. 그럼에도 이병철 선대 회장의 결심은 확고했다. 1984년 5월 기흥공장 1라인 준공을 시작으로 반도체 사업을 집중 육성했다.
시작은 늦었지만 성장 속도는 엄청났다. 1984년 10월 256K D램 개발을 시작으로 1986년 7월 1메가 D램 개발, 1987년 세계 반도체 업계 톱10 진입(9위), 1988년 반도체 사업 첫 흑자 실현에 이어 1992년 세계 D램 시장 1위에 올라섰다. 반도체 산업 본격 진출을 선언한 지 10년째 되던 해에 이뤄낸 기념비적인 성과다. 삼성전자는 D램과 낸드플래시 등으로 대표되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세계 1위 자리에 올랐다.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사진=삼성전자 제공]
지방소득세는 성남, 화성, 수원, 용인 순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4위 안에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장이 있는 화성과 용인이 포함됐다. 특히 반도체 호황으로 인해 삼성전자가 납부하는 법인지방소득세는 2018년 1059억원으로, 1년 전(407억원)보다 두 배 넘게 늘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최근 들어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지난해 삼성전자는 인텔에 1위 자리를 내줬다.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비중이 압도적인 탓에 가격 변동에 민감하게 움직인 것이다.
비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지난해 기준 한국의 점유율은 4%로 미미하다. 세계 1위인 미국(60.1%)은 물론 중국(5.0%)에도 밀리는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비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대규모 투자 결정을 내린 배경이다.

경기 화성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 오른쪽에 EUV전용 공장이 지어지고 있다. [사진=김지윤 기자]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중 하나인 'H3' 게이트 오른쪽에는 지난해 2월 공사를 시작한 극자외선(EUV) 전용 공장이 보였다. 건물 외관 공사는 거의 마무리된 상태였다. 지게차와 덤프트럭 등이 각종 장비를 싣고 공사 현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삼성전자는 올 하반기 EUV 공장을 완공하고,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양산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EUV 장비를 연구개발 목적을 넘어서 대량 생산에 활용하는 것은 세계 최초다.
삼성전자는 EUV 공장 건설을 위해 2020년까지 60억 달러(약 6500억원) 투자를 계획했다.
EUV 광원은 반도체 미세공정 기술이 한계치에 달하면서 기존 공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광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존 불화아르곤(ArF)의 14분의 1 미만에 불과하다. 보다 세밀한 반도체 회로 패턴 구현에 적합하고, 복잡한 멀티 패터닝 공정을 줄일 수 있어 반도체의 생산성과 성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양산에 적용하려면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장비 개발과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 삼성전자가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본격적인 라인 건설에 착수한 이유다.
삼성전자는 업계 최초로 EUV 공정을 적용한 7나노(㎚) 제품을 출하한다는 방침이다. EUV 기술을 기반으로 올해 하반기에는 6㎚ 공정 기반의 제품 양산을, 내년 상반기에는 5㎚ 미세공정 기술로 혁신을 이어간다는 전략이다.
지난해 2월 열린 신규 공장 기공식에서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사장은 "EUV 전용공장을 구축해 화성사업장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중심이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지난 2000년 준공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은 EUV 공장까지 갖추며 삼성전자의 핵심 반도체 생산 기지로 떠올랐다. 157만㎡에 달하는 막대한 부지에서 약 2만9000명의 임직원들이 D램과 낸드플래시 등 첨단반도체 생산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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