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엔 아직 낯선 단어이지만, 선진국 중앙은행에서는 이미 20여년 전 도입된 정책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제로 금리를 넘어 마이너스 금리로 정책을 운용 중이다.
주요국 중앙은행의 완화적 통화정책이 확산되면서 한국도 제로 금리 시대로 진입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한국의 장기성장 추세가 떨어진 경로를 국고 10년물 금리의 적정성 구간으로 판단할 경우, 2020년 중반쯤에 0%대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같은 금리 운용은 고비용 구조를 해소하고 국가경쟁력을 높이며 소비촉진을 통해 경기침체 가능성을 줄여준다. 우리나라에서 제로 금리를 고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가 상승률이 7개월 연속 1% 미만인 것은 2015년 2~11월 10개월 이후 가장 길다. 한은은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1.1%에서 0.7%로 0.4%포인트 내렸다.
소비자의 가계수입에 대한 전망은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수출 부진과 주가 하락 등으로 가계재정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형성된 탓이다. 경기둔화로 '0%대 저물가'가 지속되자 소비자들이 느끼는 물가 상승 압력도 통계 편제 이후 최저치까지 하락했다.
양적 완화라는 말이 사용되기 이전부터 일본은 사실상의 양적 완화로 금리를 낮춰왔다. 1995년 7월 정책금리를 비롯해 대부분의 금리가 0%대로 하락하고 1999년부터 공식적으로 제로 금리 정책을 선언했다.
당시 일본은행이 겨냥한 목표도 내수 자극을 통한 경기회복, 기업의 채무부담 경감, 금융회사들의 부실채권 부담 완화, 엔화 강세 저지였다.
그러나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펼친 0%대, 혹은 그 이하의 금리 운용이 경제적 이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오히려 유럽중앙은행(ECB)은 추가적인 부양책을 시사했고, 다소나마 회복 기미를 보이던 미국 경제도 재차 둔화하는 모양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계부채가 1500조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유동성을 쏟아붓는다면 '가계빚'은 다시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성장세가 다소 둔화됐다고는 하지만 소득과 비교하면 부채 증가속도는 여전히 빠르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처분가능소득 증가율(잠정)은 3.6%로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58.1%에 이른다.
가계부채의 증가만으로 금융 부실 또는 금융위기 가능성을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가계부채의 증가 속도가 가파르고 저금리에 기반한 주택 가격의 상승이 지속될 경우 '금융의 불균형'이 누적될 수 있다.
반면, 기업의 투자 부진은 계속되고 있다.
올 상반기 설비투자는 지난해보다 8.8% 줄어 금융위기 때인 2008년(-2.2%)보다도 감소폭이 컸다. 상반기 전(全)산업생산은 전년 동기 대비 0.3% 증가에 그쳤다.
완화적 통화정책이 기업의 투자로 이어지지 않으면 사실상 앞으로의 성장 원동력도 마련할 수 없게 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금리 인하가 경제 활성화로 이어지는 것은 맞지만 제로 금리까지 하한을 낮추면 오히려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오랜 저금리 기조가 경제활력을 떨어뜨리면 구조적인 문제와 맞물려 경기 부양책으로 더 이상 효과를 나타낼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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