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철 KDI 경제전망실 전망총괄은 28일 발표한 '최근 물가 상승률 하락에 대한 평가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금융안정을 명시적 목표로 삼는 현 통화정책의 운용 체계는 물가 하락 때 기준금리 인하로 대응하는 것을 제약한다"면서 "통화정책을 본연의 책무인 물가 안정을 중심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운용 체계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물가 안정을 최우선에 둔 통화정책을 운용해야, 최근 우리 경제의 디플레이션 우려와 관련해 한은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내릴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9월 소비자물가는 작년 같은 때보다 0.4% 하락하면서 지난 8월(-0.04%)에 이어 2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10월에도 하락세면 사상 처음으로 석 달 연속 마이너스가 된다.
정규철 총괄은 "그동안 통화정책은 물가 안정이나 경기 안정을 일차적 목표로 운용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근원물가 상승률은 상당 기간 물가안정목표에 미치지 못하는 1% 안팎에서 정체했고, 경기도 둔화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통화 당국은 가계부채 급증을 우려해 작년 11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고 비판했다.

[표=KDI 제공]
이런 KDI의 주장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최근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인 통화정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혀왔기 때문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통화·재정정책의 조화를 의미하는 '폴리시믹스(Policy Mix)'가 필요하다는 발언을 그동안 여러 차례 했다. 최근 국정감사에선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해 기준금리에 대한 정부 측 의견을 전달하는 '열석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도 언급했다.
정 총괄은 디플레이션 우려와 관련해 "지난 9월 발생한 물가 하락은 일시적인 공급 충격이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다"며 "물가 하락이 지속할 가능성이 높지 않아 현 상황을 디플레이션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공급 측면에서 농산물과 석유류 가격이 지난해 같은 때보다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물가 상승률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면서 "공급의 단기적 영향을 배제한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는 0%대 중반의 상승률을 유지하고 있어 일시적 요인이 사라지면 물가는 반등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올해 1~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0.4%)이 물가안정목표(2.0%)보다 큰 폭으로 낮아진 데 대해서는 "정부 복지정책이나 특정 품목에 의해 주도됐다기보다 다수의 품목에서 물가 상승률이 낮아지며 나타난 현상"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정부 복지정책의 직접적인 영향을 배제한 민간소비 디플레이터 상승률은 상반기 0.5%로 축소됐고, 생산자물가 상승률은 1~9월 0.0%에 그쳤다"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평균값(0.4%)과 함께 중간값(0.3%)도 낮은 수준으로 하락하고 있어 물가 상승률 하락이 특정 품목의 극단치에 의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정 총괄은 또 "식료품과 에너지는 물가 상승률 하락에 –0.2%포인트,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상품과 서비스는 각각 -0.3%포인트, –0.4%포인트 영향을 미쳤다"면서 "올해 물가 상승률과 경제성장률이 모두 하락한 것은 공급 충격보다는 수요 충격이 더 주요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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