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 협의회(에교협) 공동 대표인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월성1호기 영구 정지 결정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작년 12월 24일 월성1호기의 영구 정지를 확정했다. 1982년 11월 21일 가동을 시작한 월성 1호기는 1983년 4월 22일 준공과 함께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2022년까지 연장 운전 승인을 받았지만, 2018년 6월 한국수력원자력은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조기 폐쇄를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경제성을 축소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18년 3월 한수원 한 직원이 자체적으로 작성한 보고서는 2017년 이용률 85%, 판매단가 1㎾h당 60.82원을 기준으로 가동이익을 3707억원으로 추정했다. 그런데 그해 5월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수원, 회계법인이 검토 회의를 연 이후 원전 이용률(70%→60%)과 전력판매단가(55.96→48.78원/㎾h)를 낮췄다. 이에 가동이익이 224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이덕환 교수는 이런 주장에 "말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초기 투자 비용을 모두 회수한 상황에서 앞으로 원전을 돌리면 고스란히 수익으로 돌아오는데 경제성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냐"면서 "탈원전이라는 정책 목표에 맞춰 경제성을 자의적으로 평가해 결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명 연장 결정을 5년 만에 스스로 뒤집은 원안위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이 교수는 "원안위가 영구 정지를 결정하면서 경제성은 자신들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고 한 것은 책임 회피"라면서 "원전이라는 거대한 기간 시설의 폐쇄 여부를 결정하는 데 경제성을 따지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큰 문제다"라고 말했다.
현재 감사원은 월성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을 감사하고 있다. 국회는 지난 9월 한수원의 월성1호기 조기 폐쇄 결정에 문제가 있다며 감사원 감사 요구안을 의결했고, 감사원은 10월 1일 관련 감사에 착수했다. 당초 작년 12월 감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2개월 더 연장했다. 이달 중으로 감사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다. 이 결과에 따라 한수원이 월성1호기의 경제성을 축소한 것이 사실로 드러나면 논란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 "원전 종주국 영국이 한국 손 빌리는데…반면교사 삼아야"
영국은 원자력 발전소 종주국이었다. 1956년 세계 최초로 상업 원전을 가동했다. 그런 영국이 지금은 후발 주자인 우리의 손을 빌려야만 하는 처지가 됐다. 1980년대 중반 탈원전을 선언하고, 신재생 에너지로 눈을 돌렸다. 30년이 지나고 다시 원전을 지으려고 하니 기술과 인력이 부족하고, 부품 산업 등 공급망도 무너졌다.
이덕환 교수는 "기초 과학이 튼튼한 영국이 원전 기술을 잃어버리는 데 30년이 걸렸는데 추격형 기술로 성공한 우리는 기술을 상실하는 시간이 더 짧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영국을 비롯해 여러 유럽 국가들이 원전을 포기했다. 대신 태양광, 풍력 등에 투자를 확대했다. 하지만 비용은 많이 드는데 에너지 효율은 떨어졌다. 전력 시스템이 불안정해지면서 화력 발전을 통해 전기를 공급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온실가스 문제가 불거졌다. 결국 영국은 탈원전을 포기하고 원전을 다시 짓기로 했다.
이덕환 교수는 "원전의 원조였던 영국이 후발 주자인 우리에게 원전을 지어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상황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면서 "기술과 인력을 잃어버리고 관련 산업이 무너지고 난 뒤 후회하면 늦는다"고 지적했다.
◆ "신한울 3·4호기 등 신규 원전 건설 취소로 막대한 비용 발생"
이덕환 교수는 정부가 원전 건설을 막으면서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늦어지면서 수천억원을 날렸고, 신한울 3·4호기 등 신규 원전 6기 건설이 중단되면서 큰 경제적 손해가 발생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두산중공업 앞마당에 가보면 원전 시설이 녹슬어가고 있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신고리 5·6호기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6월 건설이 중단됐다가 공론화위원회 의결을 거쳐 같은 해 10월 건설을 재개했다. 특히 신한울 3·4호기는 지난해 6월 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를 공식화하면서 건설이 중단됐다. 두산중공업은 이미 원자로 설비와 터빈발전기 등 주기기 제작에 5000억원을 투입한 상태다. 내년 2월까지 착공하지 못하면 정부가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
이 교수는 "발전소 건설을 위해 사들인 부지는 쓸모없는 땅이 돼 고스란히 손해로 되돌아오고 있다"면서 "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쳐 그 피해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탈원전은 공짜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탈원전 정책이 오히려 원전 사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체르노빌, 미국 스리마일 섬,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모두 인재(人災)였다"면서 "탈원전 정책으로 전문성 있는 인력이 사라지면 그만큼 사고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고 했다. 이어 "원전은 당장 이번 정권이 아니라 앞으로 60년 뒤를 봐야 하는데 그때 가서 사고가 발생하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이냐"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월성 2, 3, 4호기도 내년이면 멈출 것이라고 봤다. 내년 11월 월성원전의 사용후핵연료를 둘 보관 시설이 꽉 찰 것으로 보인다. 폐연료봉을 처리할 곳이 없어 원전을 멈춰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월성원전은 기당 발전능력이 700㎿에 달한다. 원안위가 보관 시설 증설을 허가했지만, 여전히 지역 사회와 시민단체가 반발하는 상황이다.
◆ "태양광·풍력, 우리 현실에 맞지 않아"
이 교수는 "신재생 에너지가 좋다는 것은 알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단적으로 우리나라의 일조량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65% 수준에 불과한데 똑같은 설비를 운영하면 65%의 전력밖에 생산할 수 없다는 의미"라며 "친환경이라는 태양광 때문에 산림을 훼손했다"고도 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윤상직 의원이 산림청을 통해 전국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16~2018년) 산지 태양광 사업으로 훼손된 산지 면적은 4407㏊로 집계됐다. 이는 여의도 면적(290㏊)의 15배에 달하고, 상암월드컵경기장 6040개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이 교수는 "신재생 에너지 전제 조건 중 하나가 백업 시스템"이라며 "전력 생산이 원활하지 않거나 과다하게 생산할 때 그것을 흐트러트릴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탈원전 국가인 독일의 경우 전기가 남아돌 때는 네덜란드, 벨기에에 원가 이하로 싸게 팔고 전기가 모자랄 경우에는 덴마크와 폴란드에서 화력 발전을 비싸게 사 온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이런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 전력 부족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덕환 교수 프로필
△코넬대 대학원 이론화학 박사
△서울대 대학원 화학과 석사
△서울대 화학과 학사
△서강대 자연과학부 화학과 명예교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
△제46대 대한화학회 회장
△기초과학단체협의체 회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산업기술연구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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